고풍스러운 영국 국회의사당 전경. 영국 하원은 선거구를 현재 650곳에서 600곳까지 줄이는 선거구 감축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이유종 국제부 차장
북아일랜드에서 없어지는 의석이 바로 벨파스트의 4개 선거구 중 하나다. 11일 북아일랜드 고등법원은 이 주민의 이의를 받아들였다. 선거구 재조정과 관련해 법적 검토를 하라고 했고 5월엔 소송 관련 공청회도 열린다.
영국 하원은 10년 전부터 선거구 감축에 나섰다. 의원들이 스스로 ‘밥그릇’을 줄이는 일인데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이들에게는 원죄가 있다. 2009년 의원 활동비 부정청구 스캔들이 터졌다. 전현직 의원 389명이 피아노를 조율하거나 욕조 물마개, 토스터, 쓰레기봉투 구입 등 개인적인 일에 마구잡이로 활동비를 썼다.
후폭풍은 거셌다.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는 체면을 구기며 1만2000파운드(약 1753만 원)를 반납했다. 마이클 마틴 하원의장은 물러났다. 장관 4명도 사임했다.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랴부랴 의원들이 자신들의 봉급을 결정할 독립기구인 의회윤리청(IPSA)을 만들었다.
정치권 반발이 거셌다. 노동당에 유리한 현 선거구를 보수당이 바꾸는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게리맨더링(특정 정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정하는 일)’이라는 정치적인 프레임까지 덧씌워졌다. 2013년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이 갑작스럽게 반대하면서 시행은 무기한 늦춰졌다. 선거구를 바꾸면 보수당 거물들의 내년 출마도 불투명해진다. 총리 후보이던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과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은 선거구가 사라지면 정치적 생명마저 위태롭다.
그럼에도 선거구 재획정은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됐다. 선거구획정위원회에는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4개 자치정부 하원의장이 참여하며 법원장이 지명하는 법관도 포함된다. 내무 환경 교통 지역 장관도 각 1명씩 4명을 추천한다. 선거구획정위 위원들은 일부 예외지역을 빼면 인구 7만1031∼7만8507명으로 유권자를 맞췄다. 면적도 1300km²를 넘지 않게 했다. 예외규정을 둬서 도로 교통 지역정체성 등 비인구적 요인도 반영했다. 획정 주기도 12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영국 하원은 1707년 제국의회 출범 이후 300년 이상 ‘선거구 다이어트’를 반복했다. 1800년까지 558석을 유지하다 1918∼1922년 707석까지 크게 늘었지만 1922∼1945년 615석으로 몸집을 줄였다. 이후 선거구가 늘었고 이번에 다시 줄인다. 건강을 위해 불필요한 살을 빼듯 바람직한 정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거구 다이어트는 꼭 필요하다. 고통이 따르지만 피할 수 없다.
한국 국회에서도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4월까지 선거구를 획정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여야는 ‘선거구 획정 기준안’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선거구는 2015년 기준 최소 인구 13만5707명, 최대 27만1415명으로 편차가 크다. 의석 30∼60석을 더 늘리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기득권을 내려놓기보다는 여전히 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는 의원 증원에 반대한다. 공정한 선거구는 민주주의와 평등 선거의 기본이다. 국회 몸집을 줄인다고 민심 전달이 어려워지는 건 아니다. 버려야 얻는다.
이유종 국제부 차장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