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유일 ‘한국인 미슐랭 식당’ 이영훈 셰프
이영훈 셰프가 식당 주방에서 대표 시그니처 메뉴인 간장소스가 들어간 멸치 육수 푸아그라 요리를 만들고 있다. 리옹=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920년부터 발간된 빨간색 표지의 미슐랭 가이드. 이 책에 이름을 올리는 건 세계 모든 요리사들의 꿈이다. 특히 미슐랭의 본고장 프랑스에서는 매년 1월 말∼2월 초 그해 어떤 식당과 요리사가 미슐랭 별을 받았는지에 전 사회의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달 21일 발간된 ‘미슐랭 가이드 2019 프랑스편’에는 총 632개의 식당이 등장했다. 이 중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유일한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다. 프랑스 제2도시 리옹에 있는 이영훈 셰프(35)의 ‘르파스탕’(Le passe temps·기분전환). 이 식당은 2016년 이후 4년 연속 별 1개를 유지하고 있다. 2009년 2월 프랑스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면서도 프랑스에 온 지 정확히 10년. 이제 프랑스인이 극찬하는 미슐랭 셰프가 된 그를 최근 리옹에서 만났다.》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 별을 받았던 2016년엔 발표 사흘 전 미리 귀띔을 받았다. 이후 연락이 없으면 별을 유지하는 것이고 오히려 떨어지면 연락을 준다더라. 나도 스트레스가 심해 오히려 미슐랭에서 연락이 없기를 바란 적도 있다. 지금 리옹에만 식당이 무려 약 3000개나 있다. 이 중 미슐랭 별을 받은 가게는 단 16곳. 바로 옆 식당도 한때 2스타였고 20년 가까이 별을 유지했는데 올해 탈락했다. 그만큼 경쟁이 심하다.”
―누가 심사위원인지 진짜 모르나.
“정말 모른다. 매년 9∼12월에 평가단이 온다는데 전혀 알 수 없다. 일반 식객과 똑같이 식사비를 내고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으니 어떻게 알겠나.”
―‘폴 보퀴즈’ 요리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교육과 뭐가 달랐나.
“매우 체계적이다. 매주 주제 1개를 정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그 요리만 실습하고 탐구한다. 폴 보퀴즈 식당에서 인턴을 할 때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인간문화재 격인 명장 3명을 만났다. 요리 경력이 각각 약 40년에 달하는 그들이 직접 고기와 생선을 굽고 소스를 만들더라. 내가 경험한 한국 유명 셰프 몇 명은 음식을 내보내기 전에 육안으로 확인하고 “몇 번 테이블로 보내”라는 지시만 했는데…. 지금 나도 직원 중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 당연히 고기와 생선도 직접 굽는다.”
―파리도 아닌 리옹에 창업한 이유는….
“졸업 후 파리 미슐랭 2스타 식당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내 식당을 하고 싶었다. 지금 식당 운영을 총괄하는 아내에게 ‘손님 5명만 받더라도 내 이름을 걸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다. 내가 하는 프랑스 요리를 프랑스인이 어떻게 평가할지 정말 궁금했다. 개업자금을 빌리러 안 가본 은행이 없다. 체류 자격도 확실치 않은 외국인 학생에게 큰돈을 대출해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2013년 7월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프랑스인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아쉬움에 슬펐다. 출국 직전 우연히 새로운 은행을 발견했다. 그 은행 지점장이 ‘전에도 당신 같은 중국인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며 흔쾌히 대출해줬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다. 돈을 아끼느라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사과 한 개도 제대로 못 사줬다.”
―언제 성공을 확신했나.
“2014년 4월 11일 개업 날 첫 손님은 40대 여성 둘이었다. 다짜고짜 ‘초밥을 달라’고 했다. ‘여긴 아시안 레스토랑이 아니라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했더니 ‘당신이 아시아인이니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화도 났지만 일단 초밥 재료가 없어서 돌려보냈다. 며칠 후 리옹의 유명한 음식 블로거가 왔다. 그가 호평했고 지역신문에도 크게 보도됐다. 특정 메뉴가 원하는 수준의 맛이 안 날 때는 모든 직원을 주방에서 다 내보내고 혼자 죽어라 매달린 적도 있다. 무려 두 시간 만에 내놓은 그 음식이 대히트를 쳤다. 개업 3주 만에 26석이 꽉 찼다.”
―프랑스 음식에서는 보기 힘든 맛이다.
“멸치 육수와 간장이 푸아그라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대구를 요리할 때 동치미 국물도 쓴다. 한국 음식이 프랑스 음식과 잘 어울린다.”
―미슐랭 2스타에 도전할 생각은….
“당연히 도전하고 싶다. 프랑스로 올 때 딱히 요리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명색이 프랑스 요리를 하는 내가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를 먹어도 본토에서 만든 것을 먹어봐야지’ 싶었다. 이제 더 큰 도약을 꿈꾼다. 미슐랭 별을 받고 한국에 가니 친분이 없는 셰프들도 ‘프랑스에서 한국인 셰프도 별을 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감사하다’고 하더라. 내가 별 두 개를 받으면 다른 한국인 셰프가 별을 받는 데도 도움이 될 거다. 다른 한국인이 프랑스에서 별을 받으면 당장 식당 문을 닫고 가서 밥과 술을 사주며 축하해 주겠다.”
“옛날부터 한국 식당을 꼭 해보고 싶었다. 한국 음식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이 엄청 늘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비빔밥을 좋아하니 종류별로 특색 있게 만들어 보겠다.”
리옹=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