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용수 감독(왼쪽)-수원 이임생 감독. 스포츠동아DB
FC서울 최용수 감독과 수원 삼성 이임생 감독은 친구다. 호적상으론 1973년생 최 감독이 2년 어리지만 실제론 90학번(1971년생) 동기다. 최 감독은 동래고-연세대, 이 감독은 부평고-고려대 출신으로, 대학 시절 정기전에서 뜨겁게 맞붙었다. 공격수인 최 감독의 창과 수비수인 이 감독의 방패는 언제나 불꽃을 튀겼다. 이 감독은 “최 감독은 성격이 남자답고, 스케일 큰 플레이를 했다”고 전했고, 최 감독은 “이 감독은 신중하면서 책임감이 강했다”고 소개했다.
둘은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국가대표팀은 이 감독이 1992년, 최 감독이 1995년에 데뷔했다. 둘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 감독은 지금도 회자되는 ‘붕대 투혼’의 주인공이고, 최 감독은 최종예선에서 강력한 제공권과 날카로운 슈팅으로 ‘독수리’의 위용을 과시했다.
수원 이임생 감독(가운데). 스포츠동아DB
이 감독은 1994년 유공(현 제주)을 통해 프로에 데뷔해 2003년 부산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을 뛰며 229경기에 출장했다. 최 감독도 같은 해 안양LG(현 서울) 유니폼을 입었고, 2006년 은퇴할 때까지 148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최 감독은 일본 J리그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전성기를 보냈다.
다시 라이벌이된 건 코치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이 감독은 2004년부터 수원에서, 최 감독은 2007년부터 서울에서 감독을 보좌했다. 당시 수원과 서울의 신경전은 한국프로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둘은 “언제나 전쟁이었다”고 회상했다.
서울 최용수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감독이 된 뒤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서울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승승장구하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두각을 드러냈다. 반면 이 감독은 혈혈단신 싱가포르로 건너가 프로구단을 맡았다. 평소 꾸준히 영어공부를 한 덕분에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었던 이 감독은 그곳에서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잠깐 동안 중국 무대를 경험한 둘은 2019시즌 K리그에서 맞붙는다. 최 감독은 지난해 말 서울이 강등 위기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복귀했다. 이 감독은 수원을 통해 처음으로 K리그 감독이 됐다. 책임감이 한층 커진 진짜 라이벌이 된 것이다. 이 감독은 “초보인 내가 많이 배워야할 입장”이라며 시즌을 기다렸고, 최 감독은 “서로 잘 해야 할 처지”라고 신중하게 말했다.
수원과 서울, 서울과 수원, 두 구단은 누가 뭐래도 K리그 전통의 명문이다. 하지만 현재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아니, 거의 바닥까지 떨어졌다. 요즘은 슈퍼매치가 열려도 유별난 게 없다.
“수원과 서울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제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할 차례다. 구단 수뇌부의 의지가 약해졌고, 선수층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팬들의 질타도 쏟아진다. 구단의 태도가 바뀌어야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부활의 날갯짓이 필요하다. 그래서 두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둘은 의기투합했다. “재미있는 경기를 하자”고 약속했다. 수준 높은 경기로 슈퍼매치의 명성을 되찾는 게 급선무다. 최대 시장을 형성하는 두 구단이 살아나야 K리그의 규모도 커질 수 있다. 슈퍼매치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한편으로 내년 ACL 출전권을 얻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할 시즌이다.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두 감독이 K리그 흥행을 위해 불쏘시개가 되어주길 바란다. 열악한 상황에서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듯해 미안하지만 두 감독의 능력을 믿기에 하는 부탁이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