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가루이자와는 올림픽이후 年850만명 관광객 몰리는데…
북적이는 가루이자와역… 폐쇄된 평창 시설 지난해 12월 16일 일본 나가노현 JR가루이자와역이 도쿄에서
고속철도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고 도착한 국내외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왼쪽 사진). 평창 겨울올림픽 봅슬레이 경기 등이 열린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올림픽이 끝난 뒤 연간 20억 원에 이르는 운영비 부담 문제로 폐쇄된 상태다.
가루이자와=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평창=뉴스1
25일로 평창 겨울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꼭 1년이 됐다. 하지만 경기장으로 쓰였던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은 갈등의 현장이다. 복원을 추진하는 산림청과 존치를 주장하는 군민들 간의 팽팽한 의견 대립으로 ‘올림픽 유산’으로서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반면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승마 종목이,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때 컬링 종목이 열렸던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 일본 가루이자와(輕井澤)는 2017년 854만 명이 찾은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가루이자와가 대중적 관광지가 되기까지는 편리한 교통이 기폭제가 됐다. 가루이자와는 나가노 겨울올림픽을 1년 앞둔 1997년 고속철도 호쿠리쿠(北陸) 신칸센 개통으로 도쿄역과 1시간 10분 만에 연결됐다. 평일 하루 31회, 주말과 휴일 35회 운행한다. 자치단체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신칸센 개통에 맞춰 역 바로 뒤에 200개가 넘는 점포가 입점한 아웃렛 쇼핑몰을 유치했다. 도보와 버스로 지역 내 목적지에 쉽게 이를 수 있도록 동선을 짠 덕분에 버스로 50km 거리인 일본 3대 온천 구사쓰(草津) 온천 주변 지역도 관광특수를 누린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개·폐회식장과 가장 가까운 역인 고속철도(KTX) 진부역(평창군)은 자가용과 택시 없이는 10km 남짓 떨어진 리조트와 스키장을 오가는 것도 불편하다.
고속철도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고 JR가루이자와에 도착한 승객들이 승강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왼쪽) JR가루이자와역에는 가루이자와에서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 승마 경기, 가루이자와의 주요 상징물,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컬링 경기를 기록한 상징물이 걸려 있다. 가루이자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름과 겨울올림픽 경기를 모두 치른 도시다. 가루이자와=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철도회사 JR히가시니혼(東日本)이 외국인에게 내놓은 1만 엔(약 10만 원)짜리 무제한 3일 탑승권은 2008년 2877명이던 하루 평균 가루이자와역 신칸센 승객을 2017년 3796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KTX 개통에 따른 효과는 관광 기반이 상대적으로 좋은 강릉이 독식하는 상황이고 평창은 별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평창은 “신칸센 개통은 주변 지방자치단체와 다양한 관광자원을 발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 구도 아사미(工藤朝美) 가루이자와정 관광경제과장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만하다.
1888년 가루이자와에 처음 별장을 세운 캐나다 선교사 알렉산더 크로프트 쇼의 기념 예배당. 가루이자와의 발상지로도 불리는 곳이다.(왼쪽) 높이 2560m인 아사마산에 스며든 눈과 비가 6년 간 지표면 아래 머물러 있다가 솟구쳐 나오는 시라이토노다키는 가루이자와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 유산이다. 가루이자와=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볼거리뿐 아니라 ‘이야기’도 중요한 자원이다. 가루이자와는 1957년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비가 처음 만난 곳이자 세계적인 그룹 비틀스의 존 레넌이 생전 5번이나 방문한 곳이라는 사실을 ‘스토리 콘텐츠’로 활용해 이들의 흔적을 찾는 ‘성지 순례객’들을 끌어들인다. 존 레넌이 가족과 묵으며 로열 밀크티 조리법을 남긴 ‘만페이(萬平)호텔’에는 세계에서 오는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루이자와는 1만1300개 숙박업소 객실을 활용한 마이스(MICE·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회) 산업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준비한다. 2016년 주요 7개국(G7) 교통장관회의에 이어 올 6월에는 주요 20개국(G20) 환경·에너지 관계 각료회의가 열린다. 1964년과 1998년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곳은 골프장, 수영장, 스케이트장이 어우러진 스포츠 공원으로 개발돼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해외 스포츠팀 전지 훈련지로 연중 개방되고 있다. 지난해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노르웨이, 영국, 캐나다 팀이 이곳에서 훈련했다. 평창의 슬라이딩센터를 포함한 올림픽 경기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 및 주체도 정하지 못한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가루이자와정이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컬링 경기가 열렸던 경기장을 개발한 종합 스포츠 공원 '가자코시공원'에서 어린이들이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 체험을 하고 있다.(왼쪽) 이곳은 겨울에는 야외 스케이트장으로도 쓰이는 등 1년 내내 국내외 관광객 누구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2017년 4752만 엔(약 4억8000만 원) 등 매년 흑자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올림픽 유산 활용 사례가 되고 있다. 가자코시공원 홈페이지 캡처
자연환경과 교통, 볼거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가루이자와 인구의 80%는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인구는 올해 2만 명을 넘겼고, 2016년 90억 엔(약 911억 원)의 세수를 기록하며 10년 연속 흑자 재정 행진을 이어갔다. 구도 과장은 “가루이자와를 관광지를 넘어 세계인의 ‘숙박형 리조트’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가루이자와는 20세기 초부터 온천 관광지로 떠올랐다. 1951년 ‘국제관광문화도시’로 지정돼 리조트와 골프 코스가 들어섰다. 평창과 비슷한 해발 1000m 고원지대로 7, 8월 평균 기온은 도쿄보다 5도 낮은 섭씨 25도에 그치며 피서지로 각광받았다. 전직 총리 등 정재계 실력자들의 별장 1만5882채가 있다.
가루이자와=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