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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생활 28년, 변호사로 3년간 수많은 사건 담당하며 겪고 느낀 것들…”

입력 | 2019-02-27 03:00:00

법무법인 율촌 김경수 변호사




“28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나 일선에서 변호사로 일한 지 이제 3년이 넘었어요. 변호사 생활을 해오며 ‘그동안 제가 세상의 반쪽만 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경수 변호사(58)는 “검사 시절 수사하면서 험한 일도 겪고 삶의 어두운 면도 많이 보았지만, 그럼에도 공직에서 본 것들은 정제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퇴직하고 나니 이 세상에서 돈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가졌는지 보였다. 비로소 보게 된 세상의 민낯이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불편한 진실’임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부산, 전북 지역 소외계층 위해 2억 기부,
흔쾌히 동의해준 아내 고마워

2015년 말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김 변호사는 이듬해 퇴직금으로 받은 1억 원을 부산 지역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또한 1년 후, 1억 원을 전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혜택 받은 사람들, 좀 더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받은 것을 나누어야 하는 의무와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변호사는 “어려운 이웃 한두 명에게라도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다면 내게 크게 의미 있는 일”이라며 “기부할 때마다 흔쾌히 동의해준 아내가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초임 검사로 가졌던 공명심이 점차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바뀌어

김 변호사는 28년간의 검사 생활 동안 수많은 사건을 담당했다. 201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 중수부장으로 임명돼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한보그룹 비리, 이용호 게이트, 고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아들 비리 등 굵직한 대형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검사 초임 시절에는 공명심도 있었고, 범죄자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러다 점차 그들도 다 불쌍하고, 치유해야 할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 시절 마약사범을 수사했던 때를 떠올렸다.

“수배자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파견 경찰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했어요. 공사장에서 추격전을 벌였는데 도주하던 수배자가 발을 헛딛으며 철근 위로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죠.”

그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한 피의자가 겨우 목숨을 건진 일도 있다”면서 “다들 살려고 범죄를 저질렀을 텐데, 허망하게 죽고, 죽으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부담감도 컸다”고 털어놓았다.

“며칠씩 밤새워 수사를 하다보면 검사나 피의자 모두 지쳐요. 그럴 때 먹고 싶다는 음식을 시켜주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인간적으로 대하다보면, 교도소에서 편지를 보내오거나 출소 후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는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 기업인들도 밖에서는 특별한 사람들로 비치지만 수사과정에서 들여다보면 마찬가지였다. 여러 사건들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인지 느꼈다”고 말했다.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워

김 변호사는 미래 세대인 젊은이들에게 애정이 크다. 그래서 멘토 역할이나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려고 노력한다. 세 자녀의 아버지인 그는 “아이들 성장기 지방 근무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고 털어놓았다.

김 변호사는 “부모의 역할은 기도하고 기다려주는 것 아니겠냐”며 “불안해하지 않고 믿고 기다리니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다”며 웃었다.

“사람의 맷집은 한 번에 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웃음).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길러지는 것이죠.”

김 변호사는 “검사로 일하며 유혹과 회유가 있었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많았다”면서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신앙의 힘이 컸다”고 덧붙였다.

“성경에 ‘산이 떠나고 언덕이 옮길지라도 자녀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지가 개벽해도 하느님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는 뜻이죠. 시련과 고통을 주더라도 견딜 수 없는 정도는 안준다, 피할 곳을 주겠다는 신의 약속에 의지가 많이 되었습니다.”


양성평등도 요즘 관심사, 젊은 시절 반성하며 의사인 아내와 가사분담

김 변호사는 퇴임 이듬해부터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어 대기업 회장들의 횡령·배임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맡아왔다. 한편 법률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 변론을 맡거나 조언을 해왔다. 특히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인력 소개업자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이주 근로자들을 돕게 됐다.

김 변호사는 요즘 양성평등에도 관심이 많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이 법으로 보장돼 있지만 실질적인 부담은 여성이 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사회공동체가 출산, 육아 등에 대한 부담을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내가 의사인데 출산일까지 진료하다가 저녁에 출산하기도 했어요. 자신의 일을 계속 하면서 세 아이를 낳고 키워냈지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가사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웃음). 요즘엔 설거지와 식사 준비를 나누어 해요.”

김 변호사는 로펌 취업 제한 기간(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검사장급 이상 검사는 퇴임 후 3년간 매출 1백억 원 이상의 대형 로펌 취업이 제한됨)이 끝난 올해부터 율촌에 자리를 잡고 초기수사대응, 증권금융 분쟁, 건설부동산 분쟁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대형 법무 법인에서는 개인 변호사일 때와 달리 크고 복잡한 사건을 여러 전문 분야의 변호사들과 유기적으로 협업하며 풀어갈 수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하며, “조세, 공정거래, 법률자문 부문에 강점이 있는 율촌에서 형사 사건 분야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수 변호사는 …

1960년생. 경남 진주고, 연세대 법대 졸업. 1985년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17기. 1988년 검사 생활을 시작. 서울중앙지검 특수1·2부 검사 및 부부장검사, 특수2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으로 경제 범죄나 부패 범죄 수사를 주로 담당했다. 특별수사의 다양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사법연수원과 법무연수원에서 실무 강의를 하기도 했다. 대구 고검장을 끝으로 2015년 검찰 생활을 마무리하고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1월부터 법무법인 율촌으로 자리를 옮겨 형사사건, 증권금융 분쟁, 건설부동산 분쟁 등 업무를 맡고 있다. ‘김경수의 법률 톡톡’ 동영상을 매월 한두 편 씩 제작해 생활 속 법률 상식을 제공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1997년 설립된 법무법인으로 기업 법무 및 금융, 공정거래, 건설, 지적재산권, 해외투자 등 폭넓은 분야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외국의 변호사 및 회계사, 변리사 등 8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고객에 대한 헌신’ ‘창의적인 혁신’ ‘탁월한 서비스’를 주요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해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 로펌과도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글로벌 로펌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글/김경화(커리어 칼럼니스트, 비즈니스 · 라이프 코치)

사진/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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