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8일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국과 북한의 제2차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상 국면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진일보된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해 북한에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 북한은 대북제재 유예 등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비핵화 단계의 어느 수준까지 이행을 담보할 것인가?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아무도 북-미 회담 결과를 속단하지는 못한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일련의 남-북 및 북-미 간 협상이 남-북-미 정상 주도로 하향식(top-down)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제2차 북-미 회담도 양국 실무진이 협상안에 대한 대략적 합의를 하였다 하더라도, 회담 당일 합의는 결국 예측이 불가능하기로 ‘악명 높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담판’에 의해 결정될 공산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오전 열차 편으로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해 환영식을 마친 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하노이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동당=AP뉴시스
그런데 2018년 이래 남북 및 북미 협상이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정상의 협상력 등 ‘1차 이미지’와 국내 정치 환경 등 ‘2차 이미지’에 기반을 둔 북핵 협상 분석이 국제안보 환경 등 ‘3차 이미지’에 입각한 분석을 압도하고 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전망도 양 국가 간 특히, 양국 정상 간 협상의 손익 계산표로만 접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과 분단이 한민족의 자의적 행위나 의사가 아닌 강대국 간 냉전의 산물이었기에, 북핵 같은 당면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거나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달성하는 데 있어 강대국 간의 역학관계가 지대하게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역내 안보환경의 얼개를 결정짓는 미중 관계의 큰 그림 속에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조망하지 않는 것은 자칫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미중 간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의 맥락에서 이번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 및 파장을 전망한다.
중국이 경제적 및 군사적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적어도 지역 레벨에서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른바 ‘중심축과 바큇살(hub-and-spoke)’ 동맹체재를 강화하면서 안보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관점에서 한미동맹은 미일동맹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의 북방축으로 기능하여 왔다. 반면, 미국이 동맹국, 파트너, 네트워크 국가를 동원해 자국을 봉쇄하려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해양세력과 중국 사이에서 ‘완충지대(buffer zone)’로 기능하는 북한을 ‘전략적 자산(strategic asset)’으로 간주한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립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이 2013년부터 ‘일대일로(Belt and Road)’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일본과 함께 2007년에 시도하였다가 좌초되었던 미·일·호·인도 간 ‘4자 전략협력(Quadrilateral Strategic Cooperation, 이하 QUAD)’을 2017년부터 재추진하고 있는데, 중국이 QUAD를 중국 봉쇄를 위한 서구 해양세력의 연대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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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은 2018년 초 이래 북한 비핵화 협상을 추동하기 위해 미국의 전략자산을 동원하는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나 취소하였다. 또한, 한국은 미국 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악화된 한중관계를 회복시키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견인하기 위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미·일 동맹을 결성하지 않으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삼불(three NOs)’ 입장을 2017년 10월에 표명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안보네트워크에서 한미동맹의 위상이 저하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번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에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한국전 종전선언이나 평화체제 구축은 구체적 합의는 물론이고, 합의되지 않고 논의만 된다 하더라도 향후 한미동맹 및 유엔사 체제 유지를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이게 될 것이다. 더욱이 만약 이번 회담에서 북미가 비핵화와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을 한꺼번에 타결하는 이른바 ‘큰 틀의 합의(big deal)’을 이루어 낸다면 향후 주한미군 철수 등 한미동맹의 근간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될 수도 있다. 그 결과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 상에서 한국의 ‘위상권력(positional power)’은 단기적으로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는 동북아 관련 국가들이 신뢰를 축적하고 규범 준수의 경험을 쌓아가는 데 일조하여, 적어도 동북아 지역에서 ‘규범-계약적 (normative-contractual)’ 안보 질서가 구축되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친화적 세력균형(associative balance of power)’의 단초를 마련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연결자’ 또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 상에서 한국의 위상은 오히려 높아지게 될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북미 간 ‘큰 틀의 합의(big deal)’에 의해 북한 비핵화가 진전되면, 향후 미국과 중국은 북한을 자국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들이기 위해 본격적으로 경쟁할 것이다. 중국은 현재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남태평양 지역 저개발 국가의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원조, 차관, 투자의 목적이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역내에서 중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있다고 인식하는 미국은 호주, 일본과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즉,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뿐만 아니라, 지경학적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만약 북미 간 ‘큰 틀의 합의(big deal)’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완화되고 나아가 대북 투자의 문이 열리게 된다면, 중국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도 북한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국과 일본과 함께 미국 달러가 북한 시장을 잠식하도록 진력할 것이다.
중국이 제공한 항공기로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인 싱가포르로 이동하였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인 베트남 하노이로 이동하기 위해 열차 편으로 중국을 종단했다. 양국이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것을 미국에 각인시키려고 일부러 항로가 아닌 육로를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미국이 역내에서 ‘적대적 세력균형(adversarial balance of power)’을 형성하고 있는 한, 북미관계는 한미관계, 북중관계, 한중관계와 마찬가지로 큰 틀에서 미중관계에 예속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작은 협의(small deal)’ 수준의 성과만 낸다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조급함을 덜어내고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에서 한미동맹의 위상이 축소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재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