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양승태 13분 작심발언…“무소불위 檢에 맞설 호미자루 하나 없다”

입력 | 2019-02-26 16:09:00

“檢, 조물주가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 공소장 만들어내”
“20만쪽 증거자료가 가로막고 있다 ”…보석허가 요청



‘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보석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 News1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3분간 작심한 듯 검찰을 비판하며 재판부에 ‘방어권 보장’을 위한 보석 허가를 호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보석심문기일 심리 막바지인 오후 2시55분께 ‘피고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재판장의 언급에 말문을 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앉아서 해도 되겠느냐”고 재판장에 양해를 구한 뒤 “며칠 전에 우리 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사람이 내가 수감된 방 앞을 지나가면서 ‘대한민국 검찰이 참 대단하다. 우리는 법원에서 재판받고 있어서 법원을 하늘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검찰은 법원을 꼼짝 못하게 하고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키다니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며 “저는 그 사람들 얘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은 ‘별 형사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법원 자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정말 영민하고 목표의식에 불타는 수십 명의 검사들을 동원해서 우리 법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져서,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300여 페이지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면서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제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검찰이 ‘법원의 재판 프로세스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재판 하나하나마다 그 재판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법관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얼마나 또 깊은 고뇌를 거쳐 얼마나 많은 번뇌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저 옆에서 들려오는 몇 가지 말이나 스쳐가는 몇 가지 문건을 보고 쉽게 결론을 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더구나 대법원 재판과정에 대해서는 너무나 이해력이 없어서 제가 이것을 설명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이 공소장에 대해서, 저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이 공소사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무에서 무일뿐”이라며 “그리고 재판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그렇지 않고 실상이 이렇다고 밝혀야 하는 상황에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 상황에서 저는 무소불위의 검찰과 마주서야 한다. 그 무소불위의 검찰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무기는 호미자루 하나도 없다”면서 “그뿐만 아니고 그렇게 영민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검사들이 법원을 샅샅이 뒤진 거의 20여만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자료가 내 앞을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고 ‘방어권 보장’ 필요성을 거론했다.

그는 “(검찰이) 내 임기 동안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지고,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따지고 들었기 때문에, 사실 내가 무슨 자료인지 보질 않으면 아예 생각도 기억도 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내 몸이 있는, 책 몇 권을 두기도 어려운 그런 좁은 공간에서 20여만 페이지를 검토한다는 것은 아마 100분의 1도 검토를 제대로 못하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법정의 정의를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에는 거의 예외없이 형평이라는 저울이 있다. 형평이나 공평이 없는 재판절차에선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면서 “이런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 이제야 그나마 어느 정도 공개하고, 그 내용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과연 형평과 공평에 맞는 것인지, 재판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실체적인 진실 구현에 합당한 것인지 저는 묻고 싶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변호인들이 있으니 기록을 검토하면 될 것 아니냐’는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 “저는 그 말이, 바로 검찰 측의 심중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이 사건으로 가장 아픔을 겪고 고통 겪는 사람이 바로 피고인이다. 피고인 재직기간에 있었던 거의 모든 일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본인이 아니면 그 전후 관계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본인도 잘 모르는 것을 어떻게 변호인이 알겠느냐”라고 반박했다.

그는 “저는 이런 전후 사태가 제 재임기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일어난 것에 대해서 정말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또 책임을 면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을 몇 번이나 얘기를 드렸다”면서 “(다만)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을 왜곡하는 것까지 전부 용납하겠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영장심사 때) 예를 들어 ‘내가 누굴 만나서 진술을 어떤 식으로 하지 말게 했다’고 (검찰이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얼굴을 보고서 차마 얘기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전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버젓이 이 법정에서 사실인양 얘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이 사건 조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는 혹시라도 오해를 받을까, 정말 보고 싶은 후배와도 전화 연락을 안하고, 전화 연락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고 해왔다”면서 “그런 저에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견강부회(牽强附會)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 왜곡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 보석 신청에 대해서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든 나는 얘기하지 않겠다”면서 “그러나 이 사건 재판은 정말 공평과 형평이라는 우리 형사소송 이념이 지배하는 법정이 되고 그 안에서 실체적 진실이 발견이 되고, 형사소송 원칙과 이념이 구현돼 정의가 실현되는 그런 법정이 되길 바란다. 그 점을 재판부에서 양해해주길 바란다”고 진술을 마무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진술을 마친 시간은 오후 3시8분이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