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딱정벌레와 아보카도
아보카도. 동아일보DB
붉은색을 내는 ‘코치닐’ 색소의 원료인 연지딱정벌레. 동아일보DB
하지만 인공 염료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코치닐 색소가 최고급으로 애용됐습니다. 선명한 붉은색을 낼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지요. 유럽에서 붉은색은 왕권, 혁명, 악마, 욕망 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붉은 염료를 만드는 기술은 부를 축적하는 원천으로 통했습니다.
16세기 세계의 부가 중국에 몰린 이유예요. 더구나 중국은 비단이나 자기처럼, 당시로서는 최고급 물건을 수출했어요. 유럽 상인들은 이런 물건을 중국에서 사서 유럽으로 돌아가 비싸게 팔아서 돈을 벌었죠. 당시 중국의 화폐는 은이었어요. 그래서 유럽인들은 식민지를 정복할 때마다 은과 금을 착취하느라 혈안에 빠져 있었죠. 중국 물건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들 역시 식민지에서 은과 황금을 착취하려 혈안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1530년대 중반에 지금의 멕시코로 들어온 스페인 상인들이 붉은 염색의 원료인 연지벌레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540년부터 남미와 유럽 사이의 대서양 양안 사이에 연지벌레 교역이 시작됐어요.
남미의 연지벌레는 스페인의 세비야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수입됐습니다. 수입된 연지벌레는 한편으로는 터키로, 다른 한편으로는 필리핀으로 수출됐어요. 필리핀으로 들어온 코치닐은 다시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니 그야말로 연지벌레 무역이 세계화의 시작인 셈이에요. 연지벌레로 스페인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원주민들은 스페인인들이 가져온 질병들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이후 합성연료가 개발되면서 천연염료 교역이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에서는 또 다른 세계화 때문에 농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답니다. 멕시코 갱단들은 과거에 마약 밀매로 돈을 벌었어요. 그런데 멕시코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약 거래가 힘들어지자 다른 수입원을 찾게 되었지요.
아보카도를 둘러싼 비극이 일어나자 ‘피의 아보카도’를 메뉴에서 퇴출하는 식당들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생겼어요. 아보카도 대신에 다른 식재료를 이용하는 겁니다. 즉, 로컬푸드 운동과 제철음식을 먹으려는 시도예요. 아보카도처럼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일을 먹으려면 먼 곳에서 수입을 해야 합니다. 자동차, 배, 비행기 등 운반 과정에서 석유가 필요하고 이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언제부터인가 일 년 내내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딸기가 생산되기 때문이죠. 겨울에 딸기를 재배하려면 석유가 필요합니다. 사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웬만한 것은 먹지도, 쓰지도, 입지도 말아야 해요. 지금 우리가 입은 옷은 베트남같이 임금이 싼 곳에서 생산한 것을 수입한 경우가 많아요. 먹고, 쓰고, 입는 모든 물건의 생산 과정에서 석유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지구온난화와 연관돼 있는 셈이에요.
아보카도 때문에 죽어가는 멕시코 농민도 살리고 온실가스도 줄이고 경제도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치닐’ 색소가 들어간 스타벅스 음료 딸기크림프라푸치노. 채식주의자들의 반대로 판매가 중단됐다. 동아일보DB
카카오나 커피도 비윤리적으로 생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국제적인 노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인이 공존해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해가며 서로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수종 신연중 교사·환경교육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