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33일만에 보석 심문기일 출석 “불구속 재판을” 13분간 檢비판… 법정 들어오고 나갈때 허리 안굽혀 검찰 “증거인멸-도주 우려 있어”
26일 보석 심문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의 대신 흰 와이셔츠에 남색 양복을 입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6일 오후 2시 55분경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311호 중법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의 보석 심문 기일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수감 중)은 13분간 검찰을 비판했다.
구속 수감된 지 33일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양 전 대법원장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 가능성 등을 이유로 보석을 요구했다. 검찰은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구치소에서 들은 얘기라며 “‘대한민국 검찰이 참 대단하다. 우리는 법원을 하늘같이 생각하는데 검찰은 법원을 꼼짝 못하게 하고 전 대법원장까지 구속시켰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전적으로 동감한다. 목표 의식에 불타는 수십 명의 검사가 법원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져서 흡사 조물자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검찰을 비꼬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대법원 재판 과정에 대해 (검찰이) 너무나 이해력이 없어서 내가 그것을 설명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며 재판 거래 의혹을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만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 서류가 내 앞에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며 “지금 내 몸이 있는 곳은 책 몇 권 두기도 어려운 그런 좁은 공간인데 (수사기록을) 검토한다는 것은 100분의 1도 어렵다”며 보석을 주장했다.
검찰 측은 “피고인은 공범들이나 현재 수사 중인 전·현직 법관에게 부당한 영향을 줘 진술을 조작하거나 왜곡할 우려가 충분하다”며 보석 기각을 요구했다.
“구속영장제도가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시된 채 일종의 보복 감정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면이 있다”는 양 전 대법원장 측 주장에 대해 검찰은 반발했다. 검찰은 “대법원장으로서 현재까지 운영해온 제도를 자신이 그 대상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폄하하는 건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신중하게 검토한 뒤 적절한 시기에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예지 기자 ye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