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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의 재발견]〈91〉고리타분은 한자성어가 아니다

입력 | 2019-02-27 03:00:00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 개그를 하나 보자.

골이따분한(×) 성격

세상에는 정말 기발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정해진 격식이 파괴되었을 때나 그러면서도 그럴듯해 보일 때 우리는 즐겁다. 놀랍게도 이 개그는 ‘고리타분’이라는 말의 원뜻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말의 뜻은 뭘까? 일상의 의미를 추출하려면 이 말을 넣은 짧은 문장이나 어구를 만드는 것이 좋다.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실제 쓰임 안의 의미를 찾아야 살아 있는 어휘를 익힐 수 있다.

고리타분한 (사람, 책, 논의)

이 말의 의미는 ‘새롭지 못하고 답답하다’이다. 사전에서도 이 뜻은 이 말의 ‘두 번째 의미’로 적혀 있다.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첫째, 첫 번째 의미는 뭘까? 둘째, 이 개그의 어디가 그럴듯하다는 것일까? 두 번째 문제부터 먼저 풀자.

이 개그에는 말소리의 법칙이 들었다. ‘고리’라 쓰든, ‘골이’라 쓰든 소리는 같다. 우리말 표기의 음절 첫 번째 ‘ㅇ’은 빈자리다. 앞말에 받침이 있으면 뒤 음절로 넘겨서 소리 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연음’이라는 원칙으로 세계적으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래 소리 ‘고리’를 연음 현상의 결과로 보아 분리해 적은 것이 ‘골이(×)’다. 듣는 사람에게 ‘고리타분 : 골이따분(×)’의 짝이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유다.

이 개그의 또 다른 재미 요소는 ‘새롭지 않고 답답한 성격’은 우리를 따분하게 한다는 직설적 비판이다. 덕분에 맞춤법 논의에서 오가는 고리타분한 말들이 누군가를 따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하기도 한다. 오래전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는 말이 있었다. ‘골이따분(×)’이라는 개그 덕분에 많이 웃었다면, 한바탕 웃은 후에는 실제로 이 안에 든 의미들을 짚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고리타분’을 한자성어로 생각한다. ‘고리타분’이라는 한자성어에 ‘하다’가 붙은 것으로 보아 글자 수를 맞춘 개그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은 고유어다. ‘타분하다’라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이 말은 우리가 앞서 질문한 첫 번째 것과 관련되어 있다.

‘타분하다’는 ‘입맛이 개운하지 않다, 음식의 맛이나 냄새가 신선하지 못하다’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뜻이 ‘고리타분하다’의 첫 번째 의미이기도 하다. ‘타분하다’든 ‘고리타분하다’든 원래 냄새나 맛과 관련된 의미에서 확장되어 사고나 성격, 사람 등에도 쓰이게 된 것이다.

● 맛이 고리타분하다. ≒ 맛이 타분하다.
● 냄새가 고리타분하다. ≒ 냄새가 타분하다.

당연히 ‘고리’의 의미가 궁금하지만 아쉽게도 ‘고리’의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골이따분(×)’이라는 말 자체에 인상을 찌푸릴 필요는 없다. 덕분에 이 말이 한자성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원래 역한 냄새나 맛을 표현하던 ‘타분하다’라는 말로부터 왔음을 알게 된 것이니까. 게다가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맞춤법 개그에조차 말소리의 원리들이 들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