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촌 백관수 옥중 한시집 ‘동유록’
2·8독립선언의 주역이었던 근촌 백관수(1889∼1961·사진)가 일본 도쿄의 감옥에서 대한 독립의 봄을 기다리며 지은 옥중 한시 ‘정녕 때는(正當)’이다. 백관수는 1919년 도쿄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학생 대표 11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했다. 백관수는 이 사건으로 체포돼 1920년 3월 25일 출옥할 때까지 1년여 옥살이를 했다.
백관수가 당시 감옥에서 쓴 한시집 ‘동유록(東幽錄)’이 100년 만에 번역 출간됐다. 차남인 백순 박사(80·미국 버지니아 워싱턴대 교수)는 동유록에 실린 한시 71편을 우리말과 영어로 번역한 ‘동유록’(시산맥·1만 원)을 최근 발간했다. 백 박사는 시집 4권과 평론집 여러 권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백 박사의 해설에 따르면 백관수는 대한 독립의 열망을 한시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표현했다.
“이 충성스러운 마음과 저 의로운 가슴 어찌 다르리오(此忠彼義何由別)/천년 세월에도 나라 사랑하는 인물 함께 깨치리(千載共醒愛國人).”(‘일백 번 죽음의 각오’에서)
백관수가 시에 표현한 봄은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한국이 독립하는 봄이고, 백관수는 그런 봄이 반드시 도래한다고 확신하는 한편 충의로운 나라 사랑으로 봄을 열망하고 있다고 백 박사는 설명했다. 백 박사는 “이런 마음이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45년 광복의 한 디딤돌이 됐으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옥중의 백관수는 “청산의 두 친구 감방 찾아 와서(靑山二友訪幽居)/은근히 알려 주네 우리의 옳은 뜻 사라지지 않고(袖示慇懃意不疎)”(‘청산의 두 친구·靑山二友’에서)라며 2·8독립선언이 불씨가 돼 한국 전역에 독립운동이 번지기를 열망했다.
감옥 안에서 연말을 보내면서도 독립을 향한 일편단심은 그대로였다. “문 위에 달은 소나무 오랑캐 풍속이라고(飾松門戶看夷俗)/고향 산 폭죽은 내 나라 풍속이라 여겨지네(爆竹鄕山思國風)/많은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외로운 거처(耿耿不眠獨居處)/외로운 등불만 일편단심 마음 붉게 비추이네(孤燈惟照片心紅).”(‘섣달 그믐날 밤·除夜’에서)
“소식 들었네 강화조약이(聞道講和約)/근래 이루어지고 어떠한 것이 이루어졌는지(近成何所成)/남들에게는 이로운데 우리에게는 이롭기 어려워(利人難利我)/패권 싸움과 영토 싸움이네(爭覇又爭城).”(‘강화조약3’에서)
그러나 2·8독립선언의 대의를 굳게 믿으며 마음을 다졌다.
“만약 스스로 후회한 바를 말한다면(若言所自悔)/오로지 과업을 이루지 못함이요(惟業不擧)/또 잘못함을 말한다면(又言所誤)/형세가 따르지 못함이라(勢不與).”(‘자위가·自慰歌’)
2·8독립선언이 자유와 정의에 근거를 둔 운동이라는 확신도 “자유 원래 가치가 있고(自由元有價)/정의 본래 치우치니 않네(正義是無偏)”라고 읊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