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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임수]엘리엇의 탐욕

입력 | 2019-02-28 03:00:00


미국계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홈페이지에 밝힌 기업문화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thoroughness(철두철미)’와 ‘tenacity(집요함)’이다. 2001년 재정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의 국채를 헐값에 사들인 뒤 10년여의 소송 끝에 막대한 돈을 받아낸 엘리엇의 속성이 그대로 담겼다. 이 일로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를 맞았고 엘리엇은 ‘벌처(vulture·동물 사체를 먹는 독수리) 펀드’라는 악명을 얻었다. 기업 투자전략도 비슷하다. 취약한 지배구조나 낮은 주가 등 약점을 파고들어 수익을 올린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 출신의 폴 싱어 회장(75)이 1977년 설립한 엘리엇이 한국에 널리 알려진 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면서다. 합병은 결국 성사됐지만 엘리엇은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까지 제기했다. 지난해부턴 현대자동차그룹을 타깃 삼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무산시킨 데 이어 경영 간섭을 노골화하고 있다.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 원대 고배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측이 제시한 배당금의 5, 6배에 달하는 액수이며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의 3배가 넘는다. 또 현대차의 경쟁사인 중국계 전기차 회사 임원 등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기업의 장기 발전이나 미래 경쟁력엔 관심 없고 단기 이익만 챙기려는 행동주의 펀드의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아시아 기업을 겨냥한 헤지펀드들의 공격은 6년 새 10배 넘게 급증했다. ‘한국 기업 사냥’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엘리엇 이전에도 2003년 소버린의 SK 공격, 2006년 칼 아이컨의 KT&G 공격이 있었지만 법이나 제도가 전혀 바뀐 게 없다는 점이 뼈아프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현실에선 헤지펀드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큰 제도들이다. 엘리엇에 더 당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이를 손봐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