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그렇게 철저하게 엄마의 선택으로 자란 친구들은 대부분 결정 장애가 있다. 난 막내 작가로 뽑은 친구들에게 두 가지 심부름을 시켜본다. 첫 번째는 김밥. 회의 도중 밥 먹으러 가기 애매하면 카드를 주며 시킨다. “우리 김밥 먹고 할까? 분식집에서 김밥 좀 사다 줄래?” 그러면 막내 작가는 일단 활기차게 나간다. 그러나 분식점에 들어선 순간 동공 지진을 경험한다. 김밥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참치, 야채, 소고기…. 대부분의 막내작가는 제일 싼 야채김밥 여섯 줄을 사온다. 이런 친구들은 센스도 없고 고민도 없고 대부분 1년 안에 그만둔다.
그나마 다행인 친구들은 늦었지만 분식집에서 전화로 “선배님, 김밥 종류가 너무 많은데 어떤 걸로 사갈까요?” 물어보는 친구들이다. 조금 더 센스가 있는 친구는 김밥을 종류별로 사온 후 “다양하게 맛보시라고 종류별로 사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의 터프한 마마보이는 분식점 주문대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선배님들이 김밥 사오라는데 무슨 김밥 사가지?” 지금까지 여러 명에게 김밥 심부름을 시켜봤지만 “어떤 김밥 드실지 주문받겠다”고 미리 말한 막내 작가는 없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회의가 길어지고 아이디어가 잘 안 나올 때 내 카드를 주면서 “커피 한잔 마시고 하자!”라며 심부름을 시키면 김밥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대부분 아메리카노 여섯 잔 사오거나 종류별로 여섯 잔을 사오거나. 얼마 전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친구가 거들었다.
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데, 이런 일은 회사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라며 회사원 친구가 말했다.
“나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신입사원 어머니더라고. 자기가 늦게 깨워서 아들이 지각할 거 같다고. 아들이 늦게 일어난 게 아니라 자기가 늦게 깨워서 그런 거라고.”
“그 친구 겉모습은 터프하지 않냐?”
“완전 상남자. 키 180에 근육맨.”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