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트럼프 핵담판 결렬]리스크 드러낸 ‘톱다운’ 방식 협상
핵담판 ‘노딜’에 오찬장 ‘노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찬을 할 예정이었던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연회장이 오찬이 예정된 시간에 텅 비어 있다. 데이비드 나카무라 워싱턴포스트 기자 트위터
○ “빅딜 아니면 합의 없다” 양보 안 한 美
정상회담 직전인 28일 오전(현지 시간) 하노이에서 만난 미 정부 관계자는 “오전 8시 45분 현재 북-미가 비핵화 합의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합의 여부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했다”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비핵화 의지가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던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걸고 전면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외 고농축우라늄 시설 등 모든 핵시설과 미사일에 대한 포괄적 신고와 폐기를 요구했다.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과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재확인한 것.
미국은 지난달 21일부터 진행된 실무협상 초기부터 ‘영변+α’에서 양보(back-down)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21일부터 닷새간 이어진 실무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동결과 종전선언 등 초기 조치들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도 정작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 도착한 26, 27일엔 실무협상을 중단한 이유다. 현지 소식통은 북-미 정상의 첫 대면을 앞두고 “비핵화를 어디까지 합의하느냐에 따라 다 될 수도, (기존 합의가) 모두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 톱다운 고집하며 ‘살라미 전술’ 편 北의 오판
하노이 합의 무산을 두고 비핵화 조치를 잘게 쪼갠 ‘살라미 전술’로 나선 김 위원장의 오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은 지난해 9월 남북 평양공동선언과 11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당시 이미 북한이 공개한 카드다. 미국이 모든 핵시설의 폐기와 포괄 신고를 내걸면서 ‘빅딜’의 조건이 달라졌는데도 김 위원장이 영변 외 핵시설과 핵무기를 남겨두고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핵군축’ 카드를 내밀었다가 65시간 40분의 열차 행군의 소득도 없이 돌아가게 된 셈이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미 회담에 대한 불신이 커진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합의 무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 건 북한에 좀 더 요구해 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번엔 서명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깔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하노이=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