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0시 15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리 외무상은 약 7분간 미리 준비한 회견문을 읽어 내렸다. 굳은 표정으로 회견문을 읽어 내린 리 외무상의 시선은 대부분 준비해 온 회견문에 꽂혀있었다.
북한이 정상회담 합의 결렬 11시간 만에 리 외무상을 내세워 직접 입장을 발표한 것은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출국 전 기자회견에 대한 맞대응을 위한 것. 리 외무상은 “우리는 모든 제재를 요구한 게 아니다”라며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정상회담 합의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린 것이다.
다만 기자회견 시작 전부터 “우리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말한 리 외무상은 쇄도하는 기자들의 질문을 뿌리치고 회견장을 나섰다.
한편 리 외무상의 기자회견에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배석했다.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해 회담을 취소 위기로 몰고 갔던 이들이다. 회견에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담당해온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노이=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