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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끝내 거부한 미국의 한가지 추가 요구는 ‘핵리스트 신고’

입력 | 2019-03-01 04:18:00

북한 “영변 우라늄도 폐기 제안했다”…트럼프 회견 반박
핵리스트 신고 거절하고 석유제한 등 제재해제 요구한 듯
北 “입장 변함 없을 것”…더욱 불투명해진 비핵화협상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초유의 정상합의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전례 없는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북-미간 진실게임 양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특히 북한은 영변 핵 폐기 조치 외에 미국이 요구한 한 가지 ‘추가 조치’를 합의 결렬의 이유로 지목했다.

●北이 해제 요구한 민생 관련 제재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전면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중 리 외무상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 내용은 두 가지.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전면적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것과 미국이 북한에 모든 핵시설의 폐기와 포괄신고를 요구했다는 대목이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중 민수(민생)경제,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무산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그런 요구는 들어줄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해제를 요구했다고 언급한 민생경제 관련 대북제재는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발사 도발로 채택된 유엔결의 2397호에 담긴 석유수입 제한 조치와 2371호의 북한 신규 해외노동자 수출 금지 등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미국과 실무협상 과정에서도 현재 50만 배럴로 제한된 정유제품 수입한도를 늘려달라고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딜브레이커’는 핵리스트 신고?

미국이 요구한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도 북-미간 주장이 엇갈렸다. 리 외무상은 “이번 회담에서 현실적인 제안을 했다”며 “영변지구 플루토늄, 우라늄을 포함해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 점검해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영변 핵시설 가운데 2007년 6자회담으로 이미 불능화를 약속한 바 있었던 플루토늄 생산 시설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모두 폐기하고 이를 검증받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회담 과정에서 미국 측은 영변 핵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며 “미국이 우리 주장을 수용할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리 외무상이 하노이 합의 결렬의 핵심 이유로 꼽은 ‘한 가지 조치’는 모든 핵시설에 대한 포괄적 신고가 유력한 것으롭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리에겐 (비핵화) 일정표와 순서가 있다”며 “영변 핵시설을 해체한다고 해도 그 외에도 미사일 시설과 핵탄두 무기 시스템 등이 남아 있다. 핵 목록 신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더욱 어려워진 비핵화 협상 재개

다만 북한의 직접 밝힌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도 북한이 요구한 대북제재 해제에 충분조건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북한이 지목한 2016~2017년 대북제재 조치는 4~6차 핵실험과 잇따른 ICBM 도발로 채택된 제재들. 핵시설리스트를 제출을 피하면서 이 기간 생산한 핵탄두나 ICBM 기술 등을 그대로 두고 영변 핵시설만 폐기하면서 대북제재의 시계를 2016년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석유수입 제한 조치 등이 북한을 압박해온 핵심적인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직접 반박하고 나서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리 외무성은 “우리의 이런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미국 측이 협상을 재개하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