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맥퀸/앤드루 윌슨 지음·성소희 옮김/608쪽·2만5000원·을유문화사
영국 패션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위 사진 오른쪽)과 모델 케이트 모스. 모스는 맥퀸을 “아나키스트, 재미있는, 날씬한, 논란을 몰고 다니는, 친구, 헌신적이고, 카리스마 있고, 혁신적이고, 음울하고, 의지가 굳세다”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짧은 생애를 살다간 맥퀸은 패션계는 물론이고 세계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아래쪽 사진은 그가 선보인 2009∼2010년 가을·겨울 컬렉션 ‘풍요의 뿔(The Horn of Plenty)’. ⓒ Getty Images·을유문화사 제공
“이유가 여러 갈래겠죠. 근데 책이 다룰 정도면 ‘교훈적’이길 바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평전의 핵심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건데. 게다가 삶이 바빠서 그런지, 큰 줄기만 알려고도 하고. 그래서 저희끼린 ‘교육용 위인전’에 익숙해서가 아닐까 짐작하곤 하죠.”
그게 맞는다면, ‘알렉산더…’는 그런 흐름을 가장 거슬러 올라가는 책이다. 평범한 우리네에겐 별반 교훈적이지 않다. 그리 두껍진 않지만 간략하지도 않다. 패션 문외한에겐 진입장벽도 있다. 일단 맥퀸이 누군지 모르면 어떻게 이 책을 집어 들겠나.
영국 노동자 집안 출신인 그는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언제나 돈에 쪼들렸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매형에게 성폭력에 시달린 상처는 평생을 지배했다. 게다가 보잘것없는 외모에 동성애자였으니. 뭐 하나 ‘주류’가 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했을 때조차 비아냥거림이나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맥퀸은 자기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스케치 없이 원단에 바로 가위를 갖다대도 완벽한 옷태를 만들어냈다. 양복점 수습 등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았기에 현장을 장악할 줄 알았다. 그리고 ‘패션을 위한 패션’에 갇히기보단 경계를 넘나들며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또 그걸 실현시킬 추진력을 내뿜었다.
물론 단점도 뚜렷했다. 그런 시절 그런 업계였다지만,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았다. 괴팍했고, 치기 어렸다. 뭣보다 인성이 ‘×차반’이었다. 평전은 다소 애정을 갖고 점잖게 감싸는데, 천재고 뭐고 친구 삼긴 글렀다. 인간적 배신도 적지 않다.
그런데 묘하다. 그래서 더 이 인물이 끌린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부제 ‘광기와 매혹’처럼 나방을 유혹하는 불꽃이 넘실거린다. 게다가 구질구질한 짠함도 귀를 간질인다. 역시, 인생은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다. 제로섬 게임처럼 뭔가 가지면 뭔가를 잃는다. 악마가 건넨 행운은 신이 주는 행복을 앗아가는지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