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평등 최악 치닫던 19세기 英, 보편교육 통해 임금도 경쟁력도 높여
선행학습 금지로 학교서 영어 못 배워… 이중언어, 소득 높이고 치매에 도움
사치 아닌 인적자본 투자로 접근해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이후 영국 의회는 위원회들을 꾸려 교육과 산업 전반의 문제를 심층 조사해 제도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1870년의 교육법은 정부가 5∼13세 아동 누구에게나 보편적 초등교육을 제공하게 했다. 이후 여러 해에 걸쳐 노동자의 지식과 기술, 즉 ‘인적자본’ 수준을 높이기 위한 법들이 계속 의회를 통과했다. 교육은 더 이상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높아져 임금이 올랐고 산업 경쟁력도 회복됐다. 소득 대비 임대료는 극적으로 떨어졌고 소득불평등은 크게 개선됐다. ‘포용적 성장정책’의 고전적 사례다.
요즘 많은 학자와 국제기구들이 말하는 포용적 성장의 공통분모는 누구도 배제하지 말고 널리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특히 누구든 어릴 때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처방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은 그렇게 포용적이지 않다. 당장 초등 1, 2학년생 90여만 명이 ‘방과 후 영어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다. 월 10만 원에 영어를 배울 수 있었을 어린이들이 수십만 원을 내야 하는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고, 그 돈이 없는 집 아이들은 배제된다.
영어 교육을 초등 3학년 이전에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연구를 보면 7세 이전에 시작하는 조기 외국어 교육은 어휘력엔 부정적일 수 있으나 두뇌 발달과 인지능력, 사회성엔 좋다고 한다. 노후에 치매를 늦추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의 연구들도 이중언어(bilingual) 능력이 있는 사람은 외국어와 무관한 업무를 하더라도 모국어만 하는 사람보다 소득이 높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제네바대 연구팀에 따르면 스위스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약 9%가 국민들의 다중언어 능력에 기인한다고 한다.
외국어 교육은 사치재가 아니라 인적자본 투자이며 개인의 소득뿐 아니라 나라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도 공립 초등학교들이 방과 후 교실을 통해 K학년(유치원)부터 외국어를 배울 기회를 주고 있고, 2015년경부터는 대다수의 주가 이중언어 인증제를 도입해 외국어 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전 국민을 이중언어 능력자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초등 저학년 때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영어를 배우면 그 잠재 효과는 오래간다. 이 정도 기회는 널리 제공해줘야 포용적이지 않나. 주병기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 소득에 따른 성적 격차가 가장 심한 과목이 영어다. 공교육에서 영어 비중을 줄여도 영어 수요는 없어지지 않는다. 격차는 더 확대된다. 이런 수요를 공교육이 최대한 흡수해주는 것이 포용국가다. 불가피한 기회 격차는 기회균등 입시로 보정하고 돈이 문제면 온라인, 인공지능도 적극 활용하기 바란다.
지난해 10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초등 1, 2학년 방과 후 영어를 되살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의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정부는 차제에 교육과정 전반을 바꿔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주기 바란다. 우리 국회에 19세기 영국 의회 정도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인가.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