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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 새긴 시계 세상 딱 한벌 슈트

입력 | 2019-03-04 03:00:00

나만의 명품 만들기… ‘맞춤형 소비’의 진화




“맞춤 슈트요? 같이 지하로 내려가시죠.”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구 수트서플라이 한남점. 맞춤 정장을 구입하고 싶다는 말에 점원은 수백 개의 제품이 진열된 1, 2층 매장을 제쳐 두고 대뜸 지하로 안내했다. 지하에는 색깔과 사이즈별로 다양한 셔츠와 바지, 재킷이 진열돼 있었다. 디자인 패턴이 각기 다른 원단과 단추도 눈에 띄었다. 같은 매장 안이었지만 다른 손님들은 잠시 출입시키지 않는 ‘비밀의 방’ 같은 느낌이었다. 타인이 보는 곳에서 신체 사이즈를 재는 것을 꺼리는 고객을 위한 배려였다.

○ 80여 개 점검 목록 통해 나만의 옷 만들어

원단 색깔과 디자인 패턴을 선택하자 점원이 신체 사이즈를 재기 시작했다. 어깨, 가슴, 허리 등 일반적인 측정 부위뿐만 아니라 지퍼 라인, 허벅지, 종아리, 발목까지 신체 여러 곳의 사이즈를 꼼꼼히 체크했다.

사소한 습관도 디자인에 일일이 반영됐다. 왼쪽 손목에 시계를 자주 찬다는 말에 재단사는 셔츠 양쪽 손목 둘레를 각각 다르게 표시했다. 단추나 포켓 디자인, 위치, 개수 등도 선택이 가능했다. ‘체크무늬 네이비 컬러, 라지 사이즈’같이 사이즈와 색상만 선택하다가 갑자기 수십 개의 선택권을 갖게 되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재단사와 스무고개를 하며 완성돼 가는 슈트를 떠올리니 마치 패션 디자이너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슈트를 만들기 위해 재단사와 기자는 1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옷을 갈아입었다. 체크리스트만 80여 개나 된다. 선택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만 주로 고객의 의견이 반영된다. 제작 기간은 약 6주이며, 가격은 130수 기준 120만 원 정도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개인 취향을 소비에 반영하는 ‘개성 소비’가 늘면서 기성품이 아닌 맞춤형 서비스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맞춤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인 건 의류 브랜드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달 강남점에 맞춤 셔츠 자체브랜드(PB)인 ‘카미치에’를 론칭했다. 매장에는 배둘레, 목둘레 등을 달리한 54개의 샘플이 있다. 신체 계측 후 샘플을 입어 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사이즈의 제품을 선택하게 했다. 유니클로도 최근 고객의 신체 사이즈를 반영해 상품을 제작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사이즈와 컬러를 선택한 후 신체 치수를 직접 재거나 매장에서 측정해 목둘레는 1cm 단위, 팔 길이는 2∼2.5cm 간격으로 사이즈를 선택할 수 있다.

○ 피자, 화장품도 취향 따라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로저드뷔는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기존 판매 제품의 디자인을 새로 한다. 스트랩에 이니셜이나 문구를 새겨 주는 단순한 각인 작업을 넘어 시계 전면(다이얼)에 자신의 얼굴도 새길 수 있다. 로저드뷔 관계자는 “스위스 본사와 고객 간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자동차 색깔이나 디자인을 시계에 반영하는 등 개인의 취향을 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먹는 것에도 개성이 담기고 있다. 도미노피자가 최근 선보인 마이키친 서비스를 이용하면 도와 소스의 종류, 토핑의 양 등을 조절해 ‘나만의 피자’를 만들 수 있다. 양파나 피망 등은 적게 넣고 베이컨, 옥수수, 버섯 등은 많이 넣는 식이다. 대상은 액젓이나 고춧가루 등 조미료의 종류나 양, 매운맛 등을 조절할 수 있는 ‘나만의 김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2018년 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5%가량 늘었다.

화장품에도 맞춤형 서비스가 도입되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키엘은 개인의 피부 상태에 따라 맞춤형 에센스를 제작해 주고 있다. 일대일 상담을 통해 주름, 모공, 미백 등 고객의 피부 고민을 반영한 맞춤형 에센스를 만들어주는 식이다. 에뛰드하우스도 2가지 이상의 립스틱 색깔을 조합해 고객이 원하는 색상을 만들어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비용이 조금 더 들고 시간도 더 걸릴 수 있지만 제작에 직접 관여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상품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맞춤형 서비스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