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 이후]본보 기자, 멜리아 호텔서 만나 대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탄 경호단’이 지난달 24일 김 위원장이 베트남 체류 기간 동안 숙소로 사용했던 멜리아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내 레스토랑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하노이=뉴시스
멜리아 호텔 측은 김 위원장이 호텔을 ‘체크아웃’한 지 1시간가량 지나자 경호를 일부 완화했다. 일반인 숙박객이 북측 숙소인 17∼22층에 아예 올라가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 버튼을 막아뒀던 장치도 뗐다. 전날부터 이 호텔에 묵고 있던 기자는 22층부터 차례로 버튼을 눌러봤다. 19층에 불이 들어왔다. 19층에 도착해 호텔방들이 늘어선 통로로 나서자마자 한창 짐을 옮기고 있던 북한 경호원 2명과 눈이 마주쳤다. 짧게 깎은 스포츠형 머리에 검은색 슈트를 입고 인공기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달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리무진을 에워싼 밀착 경호로 이른바 ‘방탄 경호단’으로 불린 호위사령부 소속 경호원들이었다.
위협적인 걸음걸이로 기자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북측 경호원들은 “어디서 오셨습네까?”라고 물었다. “남쪽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한 경호원이 “이쪽으로 와보라”며 팔을 잡아끌고 짐을 옮기고 있던 화물 엘리베이터 칸으로 데려갔다. 경호원 간부로 보이는 인물은 경호원들에게 “철저히 조사하고 여기(베트남) 공안에 넘기라”고 지시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달 26일 당시 특별열차를 타고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방탄 경호단’이 밀착 호위를 하고 있다. 랑선성=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번 회담에서 합의를 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도 회담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자가 답하자 옆에 있던 이 경호원은 “단번에 (합의가) 될 수야 있겠느냐” “미국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은 4년에 한 번씩 바뀌기 때문에 (회담이 잘되려면) 미국에만 기대선 안 된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민족이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며 “우리 민족이 세계 최고의 민족 아니냐. 근데 지금 미국이 한반도 반쪽을 차지하고 (한국에) 이래라저래라 하게 둬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경호원은 “남쪽이 통일 사업에 더 힘을 써야 한다. 남쪽 사람들 모두 통일에 사명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북측)는 다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경호원들도 입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 경호원은 지난해 자신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 선생도 다음에 평양에 오시라”고 했다. 다른 한 경호원은 기자에게 대뜸 군 복무를 어디서 했는지 묻기도 했다. “서울 근처에서 복무했다”고 하자 “그럼 3야전(사령부) 소속이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기자가 경호원에게 “(군에) 몇 년 근무했느냐”고 묻자 “우리는 이게 일생의 사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화는 경호원들의 간부가 다가서면서 20분 만에 끝났다. 이 간부는 기자에게 “니 어찌 (여기에) 올라왔나. 직접 말해보라우”라며 경위를 캐묻더니 경호원들에게 “빨리 내려보내라우”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이날 평양으로 떠났다.
하노이=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