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키리졸브-독수리훈련 폐지]핵담판 결렬뒤 北에 ‘양보 조치’
한미 양국이 한미 연합 키리졸브(KR) 독수리훈련(FE)을 폐지하기로 한 가운데 3일 경기 평택시 미8군사령부 캠프 험프리스에 미군 헬기들이 계류되어 있다. 뉴스1
그동안 한미 군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해 왔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봄에 진행하던 지휘소연습(CPX·컴퓨터 워게임)과 야외 기동훈련은 사실상 폐지됐다. 연합훈련의 양대 축 가운데 한 축이 사라진 셈이다.
그만큼 이번 결정엔 우선 북-미 베트남 핵 담판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협상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한미 양국의 의중이 담겼다. 군 관계자는 “북한을 향해 가장 싫어하는 대규모 연례 연합훈련을 양보할 테니 ‘비핵화 판돈’을 더 높여서 협상장에 나오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북한이 다음 협상이 열린다면 영변 핵시설 외에 다른 핵·미사일 시설 폐쇄까지 포함하는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對韓) ‘안보 비용’ 증액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난항 끝에 타결됐지만 주한미군과 한반도 방위태세를 유지하는 데 돈을 더 내라는 미국의 의중이 실렸다는 얘기다. 당장 올해 상반기에 재개될 방위비 분담금 협상부터 미국의 압박 수위가 만만치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평시는 물론이고 유사시에도 미 전략무기의 전개 및 증원전력의 전개·훈련비용을 건건이 따져서 한국에 청구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당국자는 “국내 정치 문제로 발목이 잡힌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훈련 폐지를 내세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고 동맹(한국)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미 군 당국은 키리졸브와 독수리훈련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군사 대비태세는 확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부작용 등 우려가 적지 않다. 당장 전면전 등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대규모 증원연습과 야외기동 훈련이 영영 사라지면 연합 방위태세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칫 군이 타성에 젖을 가능성이 더 우려스럽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향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남북, 북-미 화해 기류가 고조될수록 연합훈련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론이 한미 양국에서 확산되고, 종국엔 연합훈련의 전면 중단이나 폐지론이 부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지난해부터 비핵화 기조를 살리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이 연달아 중단 및 취소되면서 군내 긴장도가 확연히 떨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