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1라운드 FC서울과 포항스틸러스의 경기에서 FC서울 고요한이 태클로 공을 살려내고 있다. 2019.3.3/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1라운드 FC서울과 포항스틸러스의 경기에서 최용수 FC서울 감독이 박수치고 있다. 2019.3.3/뉴스1 © News1
지난해 가을이었다. 한 축구 관계자는 FC서울의 부진을 설명하면서 “다른 것 다 떠나 도대체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결국 필드에서 뛰는 것은 선수들이다. 과연 수도 서울을 연고지로 삼고 있는 빅클럽 멤버들이, 대다수가 고액 연봉자인 지금 선수들이 몸값이나 명성에 어울리게 뛰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 뒤로도 서울의 추락은 날개 없이 이어졌고 기어이 강등 플레이오프라는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 외부 관계자의 지적은 사실 안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그 무렵 서울의 한 선수는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렇게 여유롭게 뛰는지 모르겠다”면서 “번번이 지는데 웃으면서 훈련하고 경기하는 선수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하소연을 쏟은 적 있다.
불을 끄러 친정으로 돌아온 최용수 감독도 깜짝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는 “안에 들어와서 보니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푸념했다. 괜한 우는 소리가 아니었고, 결국 서울은 지옥 직전에서 구사일생했다.
서울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한판이었다. 야심차게 데려온 세르비아리그 득점왕 페시치와 임대복귀한 조타수 오스마르 등 외국인 선수의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아 개막전에 나설 수 없는 악재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수비수였다가 겨울 전지훈련을 통해 공격수 변신을 타진했다는 박동진이 박주영과 투톱에 배치되는 등 복안인지 고육책인지 모를 선발 라인업과 함께 불안감은 더 커졌는데, 결과는 서울의 완승이었다.
이날 서울은 전반 10분과 28분에 연속으로 터진 황현수의 멀티골을 앞세워 2-0으로 승리했다. 최근 8시즌 동안 개막전 무승(3무5패)에 시달렸던 징크스를 깨뜨리는 승전고이자 다시 태어날 2019년을 알리는 축포였다. 승리보다 고무적인 것은 내용이다.
이날 서울은, 정말 많이 뛰었다. 이제는 20~30분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던 베테랑 박주영이 추가시간 교체될 때까지 사실상 풀타임을 뛰면서 쉼 없이 전방 압박을 펼친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들이 토너먼트 결승전처럼 뛰었다. 물론 시즌 첫 경기고 겨우내 축적된 에너지가 충분하니 가능한 움직임일 수도 있으나 마음가짐이 확실히 달랐다.
전통적으로 미드필드 진영을 빠르게 오가는 패스 플레이가 일품인 포항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끝났다. 포항 선수들이 공을 잡으려하면 서울 선수 2~3명이 달려들었다. 초반에 저러다 말겠지 싶었던 서울의 압박은 경기 내내 이어졌고 포항은 90분 동안 단 2개의 슈팅을 시도하는 것에 그치며 무너졌다. 서울의 슈팅은 무려 22개였다.
경기 후 축구 팬들이 보인 반응들 중 가장 많았던 것은 “FC서울, 정말 많이 뛴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서울 팬들이 가장 기다렸던 자세일지 모른다.
지난 2016년 9월의 일이다. 2016-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에서 본머스를 상대로 4-0 완승을 거둔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경기 후 “지금까지 상대들 중 본머스가 가장 힘들었다. 다른 팀들은 우리를 꺾기 위해 롱볼을 구사했으나 본머스는 자신들의 축구를 펼치려 했다”고 먼저 상대를 인정했다.
그리고는 이내 “우리 선수들은 공이 없는 상황에서도 마치 ‘스몰 팀’처럼 뛰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면서 “팬들은 아주 유명한 선수들이 공이 없는 상황에서도 뛰고 또 뛰고 또 뛰는 모습을 볼 때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물론 공을 가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전했다.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들이 마치 작은 구단의 선수들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뛴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축구의 기본 중 기본은 ‘뛰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어떻게 뛰는 것’과 ‘잘 뛰는 것’ 등등으로 구분해야할 것들이 많아지는 현대축구의 흐름이지만, 일단 뛰지 않고서는 상대를 꺾을 수 없다. 다시 태어날 것을 선언한 FC서울 변화의 단초는 그 ‘작은 팀처럼’이었다. 최용수 감독이 말한 ‘마지막 경기처럼’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