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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한 달 살기

입력 | 2019-03-05 03:00:00


국내의 ‘한 달 살기’ 붐을 통해 처음 주목받은 곳은 제주도. 2011년경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테마로 한 책들이 나오더니 한 달 체류가 한국 사회의 새 트렌드로 떠올랐다. 2017년 연예인이 민박집 주인으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선보여지면서 또 한번 열풍이 불었다. 섬 곳곳에 전문 숙소가 생겨난 데 이어 최근 제주의 한 호텔은 ‘한 달 살이 패키지’를 출시했다.

▷‘한 달 살기’의 경험자들이 늘면서 국내를 넘어 외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장기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고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등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의 상품까지 등장했다. 어제 인터파크 투어는 자사를 통한 해외항공권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 달 살기’ 여행 수요가 2016년보다 2018년에 19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석에 따르면 한 달 살이 인기 여행지 1위는 방콕, 2∼5위는 마닐라, 호찌민, 클라크, 하노이 순이다. 지역을 고를 때 치안 물가 볼거리 등을 주로 보는데 방콕은 저렴한 물가, 여행 인프라의 발달이 장점으로 꼽혔다.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여행이 아니라 한곳에 느긋하게 머물면서 현지인의 삶에 녹아들어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 한 달 살기의 매력이다. 물론 자녀교육에 열정적인 나라답게 아이들의 영어 실력 증진을 위해 가는 경우도 흔히 보게 된다. 번잡한 도시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마음 내키는 대로 여유롭게 한 달을 살아보는 것이 부럽긴 해도 아무나 따라하기 힘들다. 비용도 문제인 데다 평범한 직장인의 경우 한 달씩 자리를 비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법. 아내와 자녀만 집 떠나 한 달을 보내고 남편은 짧은 방문에 만족하는 ‘단기 기러기 가족’도 있다.

▷한 달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낯선 곳에서의 한 달을 보내면서 누군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얻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떠날 때보다 더 지친 심신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지금 생활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같은 단순한 이유로 혹은 너도나도 간다니까 유행에 편승하기보다 뚜렷한 목표의식 정도는 가질 필요가 있겠다. 휴식이든 치유든 내가 무엇을 얻기 위한 ‘한 달 살기’인지에 대해.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