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스몰딜’ 아닌 ‘노딜’로 끝난 북미회담 판단 착오 돌아볼 시점 오만과 맹점편향 극복 못하고 희망사항, 현실로 착각하는 한 같은 오류와 실패 거듭될 듯
고미석 논설위원
한국 정부는 어떠한 대처를 했던가. 대통령과 참모진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적 없는 기색이 역력한 정황이다. 북-미 합의를 낙관적으로 예단한 국내 사령탑의 집단적 판단은 회담 전날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에서 감지된다. “스몰딜은 성공하지 못한 회담이 되는 것이며 빅딜만이 성공이라며 두 개념을 기계적으로 분절할 수 없다.” 범위가 문제일 뿐 합의에 대한 확신은 굳건하다는 뜻이다. 결렬 직전에도 대변인은 ‘대통령과 참모진이 서명식을 시청한 뒤 입장을 내겠다’고 했다니 ‘빈손’ 확률은 상상조차 못했나 보다. 회담에서 영변 외 핵시설을 지목한 미국과, 회담 이후 영변 핵시설 폐기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평가한 한국. 북-미 중재에 나선다는 우리 정부가 이런 식의 판단 착오를 거듭한다면 나라 안팎으로부터 신뢰 추락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결론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최악의 합의, 배드딜(bad deal)은 피해서 다행이나 빗나간 예측에 이르게 된 우리 안의 과정은 다시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오매불망 남북경협을 강조하면서 예견된 실패를 읽어내지 못한 허술함 이면에 근원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건 바로 오만이다. 오만은 편견에서 나온다. 지도자와 측근들이 좁은 사고에 갇힌 채 ‘우리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과신하는 심리적 방어기제,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도외시한 채 폭주하는 행태 말이다.
고질적 오만은 고약한 후유증을 동반한다. 나는 아무 잘못 없다는 교만함으로 자기 옹호에는 필사적인 동시에 무책임의 극치를 달린다. 결국 모든 실패는 죄다 외부 잘못으로 돌아간다. 남 탓, 책임 떠넘기기의 원점이다. 시공을 초월해 과거까지 거슬러간다. 비근한 사례가 여권에서 불거진 20대 비하 발언이다. 20대의 보수화는 전 정권의 반공 교육 탓이라는 발언에 청년세대는 분개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발뺌에 앞서 현 상황에서 20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그들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자만심은 열등감과 동의어라는 점을 곱씹어 보면 좋겠다.
타인의 편향된 논리는 알아보면서 자신의 오류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맹점편향이라 한다. 누구나 나름대로 편견은 있고 나 역시 언제든 오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한 채 권력을 쥐게 되면 공동체에 심각한 폐해를 야기할 수 있다. 사회는 어느 때 어떻게 실패하는가. 문제 가능성을 예상치 못할 때, 문제를 알고도 해결 의지가 없을 때, 해결 방법을 찾아내고도 실천하지 않을 때. ‘총 균 쇠’ ‘문명의 붕괴’를 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진단이다.
권력은 힘에서, 권위는 동의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힘으로 윽박질러 권위가 설 리 없다. 오랜 독재의 경험에서 한국민은 이미 이를 체득했다. 이제 새 시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능력은 갈수록 중요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라고 했다. 어디 비핵화 협상만 그럴까. 리더의 냉철한 현실 인식을 돕는 사람들이 있느냐 없느냐는 결정적 오판과 나쁜 선택을 막는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민족의 운명을 남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면.
비핵화의 갈림길, 북-미는 각자의 과제가 있다. 우리 앞에는 우리 몫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오판에서 배우면서 진보하거나 오판을 되풀이하며 퇴보하거나.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