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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 ‘농어촌 소통령’ 선출… 신고포상금 최대 3억으로

입력 | 2019-03-06 03:00:00

조합장 1343명 전국동시선거 D-7




섬지역 투표함 ‘수송작전’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치르기 위해 인천 옹진군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5일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투표함을 덕적도행 여객선으로 옮기고 있다. 이번 선거는 농협 1113곳, 수협 90곳, 산림조합 140곳의 조합장을 선출한다. 인천=뉴스1

#1. 광주의 한 축협조합장선거 입후보 예정자 A 씨는 1월 한 조합원 자택을 방문했다. 그의 주머니에는 5만 원권 10장을 고무줄로 묶은 돈 뭉치(50만 원)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조합원을 만난 A 씨는 조합원과 그 가족 등 4명에게 악수를 건네며 손바닥 밑에 숨겨둔 돈 뭉치를 각각 전달했다. 선관위는 이 같은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밝혀내 A 씨를 광주지검에 고발했다.

#2. 경남 거제의 현직 산림조합장 B 씨는 올해 1월 2500만 원 상당의 농협상품권을 구입했다. 그는 10만 원짜리 상품권을 각각 8명에게 제공하다 덜미가 잡혔다. 선관위 조사가 시작되자 B 씨는 조합원들에게 제공한 상품권을 회수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현금을 줬다. 선관위는 B 씨를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고발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각 지역 조합장들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 최대 2억여 원의 고액 연봉에 연간 10억 원 안팎의 ‘지도사업비’를 집행할 수 있다.

각종 지역사업 관련 대출 한도 및 금리, 농수산물의 유통·가공망 등을 조정할 권한도 주어진다.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권으로 진출하기도 용이하다. 지역의 ‘소(小)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런 조합장을 선출하는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13일 치러진다. 전국 1343개 농협·수협·산림조합이 대상이다. 농협 1113개, 수협 90개, 산림조합 140개의 장(長)을 선출하는 것이다. 지난해 6·13지방선거 선출직(4016석)의 3분의 1 수준이다. 예상 선거인 수도 전국적으로 267만5537명에 이른다.

조합장선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달리 투표권자가 조합원으로 한정된다. 전국 단위 선거에 비해 폐쇄적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불법, 탈법 선거의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구시군별로 저마다 치러지던 조합장선거는 2015년부터 전국동시선거로 바뀌었다. 선거 과정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직접 관리·감독하게 됐다. ‘돈 선거’ 등 음습한 선거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서다. 선관위 관계자는 “조합원 간 친분관계는 물론이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어 위법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했다.

선관위는 3일까지 총 320건의 조합장선거 관련 위법 행위를 적발해 고발, 수사 의뢰, 경고 등의 조치를 내렸다. 2015년 제1회 선거 당시 3월 기준 488건을 적발한 것에 비하면 줄어든 수치지만 여전히 은밀한 위법 행위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중앙선관위는 올해 선거를 앞두고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무관용 원칙 방침을 세웠다. 전국 시도 선관위에 광역조사팀을 편성해 과열·혼탁 지역에선 야간순회활동도 하고 있다. 선거범죄 신고 포상금도 1회 때 1억 원에서 최대 3억 원으로 늘렸다.

선거 현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 이천시 장호원 삼거리 인근 5일장에서 조합장 선거운동을 하던 후보자 석모 씨(54)는 5일 “요즘은 금품 제공은 꿈도 못 꾼다. 조합원들도 ‘이러다 큰일 난다. 차라리 내가 밥을 사겠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돈 선거는 결국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이번 조합장선거에선 금품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천=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