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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면에 퍼진 의미심장한 미소…‘볼턴 미스터리’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입력 | 2019-03-06 14:00:00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확대정상회담 좌석배치는 많은 것을 함축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미국 측 4명(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멀베이니, 볼턴), 북한 측 3명(김 위원장, 김영철, 리용호)이 참석한 회담장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앞자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북한의 무시전략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지만 볼턴 보좌관의 표정은 ‘대단히’ 밝아 보였습니다. 만면에 퍼진 미소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합의문을 내지 못한 채 마무리 됐다.


볼턴의 의미심장한 ‘미소’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존재감을 잃었던 볼턴 보좌관이 확대정상회담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선(先) 핵 폐기-후(後) 보상’을 대표하는 리비아 모델을 강력 주장하다가 대화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주도권을 내준 볼턴 보좌관은 이후 1년 가까이 북핵문제에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실지(失地)를 회복한 볼턴은 하노이 정상회담의 ‘공식 스피커’를 자임하는 분위기입니다.

3일(현지 시간) 볼턴 보좌관은 CNN 등 3개의 방송에 연거푸 출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 제안’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미사일은 물론 생화학 무기까지 포함한 비핵화 빅딜을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이 거부했다는 내용도 소개했습니다.

특히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은 계속될 것이며, 김정은에게 큰 충격을 안길 것”이라고 한 발언이 귀에 들어옵니다.

최대의 압박이라는 단어는 볼턴의 퇴조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기조에서 자취를 감췄던 말입니다. 볼턴-최대압박의 재등장은 제재강화로 대표되는 대북압박 기조가 다시 한 번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는 뜻이기에 의미심장합니다.

볼턴은 5일에도 등장했습니다. 폭스비지니스네트워크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으면 제재강화를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북한 노동신문



볼턴 언제 재부상 했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에서 강연한 뒤 방북 협상(2월 6~8일)을 벌이고 난 뒤 승리의 V자를 그릴 때까지만 해도 볼턴의 공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상회담을 일주일 남긴 시점에 하노이에서 김혁철과 실무회담을 할 때 까지만 해도 협상의 무게 추는 폼페이오의 국무부 쪽에 실려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담판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선택은 볼턴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조는 있었습니다. 백악관이 발표한 수행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볼턴 보좌관은 지난달 27일 하노이에 홀연히 나타나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있어서 좋다며 “이틀간 논의할 것이 많다”는 트위터를 날렸습니다. 공교롭게도 비건은 지난달 25일 30여 분을 만난 이후 단 한 차례도 김혁철과의 실무협상 라인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던 때입니다.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존 켈리 비서실장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퇴임으로 볼턴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완전 장악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장문의 보고서를 읽기 싫어하고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것을 싫어하는 탓에 볼턴이 일종의 ‘문고리 권력’을 잡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너무 긴밀한 남북관계 탓에 방한 취소?

하노이로 가기 직전 볼턴의 방한계획이 무산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도 상세히 이야기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취재된 내용은 볼턴 보좌관의 서울 방문을 추진하던 중 미국 측의 요청으로 일본까지 포함하는 한-미-일 3자 협의가 계획됐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됐다는 것입니다. 애초 회동장소는 서울을 고려했지만 보는 눈도 많고 ‘번거로움’이 예상돼 부산으로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누가, 왜 취소했는지를 추론해 보자면 북-미 정상회담의 진행상황을 간절하게 듣고 싶어 하던 우리 정부가 굳이 볼턴 보좌관을 마다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현 정부와 가까운 전직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인사가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맹비난 할 정도로 현 여권의 볼턴에 대한 반감이 크긴 하지만 오겠다는 사람을 ‘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청와대가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지만 우리 정부와 회담전략을 공유할 경우 혹시 북한에 흘러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탓에 막판에 볼턴이 방한을 전격 취소했다는 시나리오 쪽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볼턴 보좌관이 즐겨 쓰는 노란색 메모장. 볼턴은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담은 노란 봉투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중요해진 상황관리

문제는 우리 정부가 아직 하노이 ‘노딜’에 대한 정확한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는 점입니다. 청와대의 언어를 빌자면 ‘복기’ 작업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회담결렬의 진짜 이유에 대한 최종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협력 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준비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문 대통령이 북한의 핵 (폐기) 제안을 칭송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갈라섰다”고 까지 쓰고 있습니다.

북핵 폐기를 둘러싼 한미 간 파열음이 커지고 있지만 동맹에 대한 관리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의용 안보실장과 존 볼턴 보좌관의 통화가 이뤄져야 한다면 지금보다 적절한 타이밍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하루에도 3~4번씩 방송에 출연해 하노이 협상에 대해 백악관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볼턴은 우리 안보실장과 전화할 시간은 없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 정부는 통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답답했던 청와대 기자들이 만날 계획이나 통화 예정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5일 김의겸 대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뭐, 현재로선 계획이 없습니다.”

하태원 채널A 보도제작팀장(부장급·정치학 박사수료)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