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11일 1차 공판기일 첫 출석 "법원 조직에 큰 누 끼쳐 죄송하다" "엄중 책임 불가피하면 책임질 것"
“공소장에 켜켜이 쌓인 검찰발 미세먼지로 생긴 신기루가 만든 허상에 매몰되지 말고 피고인 주장과 증인들의 주장을 차분히 듣고 무엇이 진실인지 심리, 판단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임종헌(60·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1차 공판기일에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11월 재판에 넘겨진 임 전 차장이 법정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작심한 듯 검찰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말할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던 시절 직무와 관련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다가 법정에 서서 실로 비통하다”며 “일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사법부를 위해서 일했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지난 8개월간 사법행정 전반에 대해 진행된 전례 없는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는 동료 법관과 법원 가족들에게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으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법치주의의 상징이자 인권보장의 보루여야 할 법원이 적폐의 온상으로 취급받고 법원 내부 갈등 여진이 계속돼 더욱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를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재판거래 등을 일삼는 사법부 적폐 온상으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며 “사법행정을 담당했던 모든 법관을 인적 적폐 청산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사법부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선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대표적인 혐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에서 해야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며 “일선에서 재판을 담당한 분들이나 국민들은 실제 현실을 겪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나 현장에서 국회, 기재부, 검찰 외교부 등 관계 설정이 간단하거나 용이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기관끼리 상호 보완하고 협조하는 것을 법원행정처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러나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관계 설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검찰이 주장하듯이 이른바 재판거래로 정치권력과 유착했다는 것은 전혀 가공의 프레임임을 말씀드린다”고 재판 거래 혐의를 부인했다.
임 전 차장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소장에서 그려놓은 게 너무나 자의적이라는 점 말씀드린다”며 “임의로 그려놓은 경계선은 너무 폭이 좁고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임 전 차장은 발언 도중에 이번 사안을 루벤스가 그린 ‘시몬과 페로’ 그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그림은 노인이 한 여인의 젖을 빠는 모습”이라며 “누군가는 성화라고 하고 영락없는 포르노로도 보이지만 포르노가 아니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 진실은 아니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은 임 전 차장의 새로운 변호인단도 법정에 출석했다. 임 전 차장의 고교, 법대 직속 후배인 이병세(56·사법연수원 20기)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해송에서는 배교연(37·변시 3회) 변호사가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임 전 차장은 지난 2012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각종 사법농단 의혹을 실행에 옮기고 지시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