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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과제 쌓였는데… 靑, 자문요청 전혀 없어”

입력 | 2019-03-12 03:00:00

염한웅 과기자문회의 부의장 쓴소리




“혁신성장, 탈원전 등 모두 과학기술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내는 정책이 현장과는 엇박자가 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주요 정책에 대해 자문을 요청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염한웅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사진)은 6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작정한 듯 정부의 소통 의지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부터 자문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1, 2기 연속 부의장을 맡고 있다. 2기 임기는 2월에 시작했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부처, 국가과학기술자문회라는 세 주체가 국내 과학기술 분야 의사결정의 핵심 창구인데 서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며 “특히 대통령비서실과의 소통이 어렵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컨트롤타워다. 1989년부터 한시적으로 설치, 운영돼 오다 2004년부터 대통령이 의장을 맡으며 위상이 강화됐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국가과학기술 전략과 정책 방향에 대해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기존의 ‘자문회의’와 주요 과기정책의 중기 계획과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심의회의’를 통합해 규모와 역할이 커졌다.

염 부의장은 과학자 전문가 집단에 의견을 묻지 않고 장기로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덜컥 결정하는 현 정부에 대해 성급하다고 평가했다.

“일본만 해도, 예를 들어 ‘수소경제 로드맵’안이 나오면 한국의 자문회의와 비슷한 기구인 ‘종합과학기술이노베이션회의’가 긴 호흡을 갖고 연구해 에너지 정책의 틀을 마련한다. 정부가 자문 결과를 수용할지는 자유지만 적어도 전문가의 총의가 모이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정책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염 부의장은 지적했다. 그는 “탈원전, 혁신성장은 모두 과학기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책인데, 자문 요청이나 검토 요청은 전혀 없던 상태에서 정책이 먼저 발표됐다”고 했다. “하나같이 현장에서 논란이 많은데, 자문회의의 의견을 구했다면 조금이라도 논란이 줄어들지 않았겠느냐”는 게 염 부의장의 지적이다.

염 부의장은 “대통령비서실이 자문회의로부터 무엇을 듣고자 하는지 분명치 않은 것도 문제”라며 “과학 분야 의사결정의 틀은 만들어놓고 활용할 줄 모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부처와 비서실이 만드는 정책이 자문회의가 생산하는 자문 주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정부 들어 자문회의가 총 14번 열렸지만 한 번도 정책과 관련한 유기적 의견 교환이 없었다”고 말했다.

염 부의장은 “1기 자문회의는 새로운 과학기술 의사결정의 틀과 축을 만든 기간이었다면 2기부터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도록 작동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열쇠를 쥔 정부가 자문회의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