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정치부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이런 장면이 가능했을까. 그건 기자들이 앞뒤 재지 않고 그냥 물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 질문한 워싱턴포스트, 로이터통신 기자들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이다. 백악관 기자단은 대통령의 모든 공개 일정에 ‘풀 취재’(돌아가면서 대표 취재해 내용을 공유하는 시스템) 기자들을 보낸다. 이들은 대통령을 포함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가장 궁금한 것을 기습적으로 묻는 게 의무처럼 되어 있다. 트럼프가 주말에 골프 치러 갈 때도 골프장 앞 햄버거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질문할 기회를 노린다.
이런 노력이 계속되는 건 가끔 질문에 답을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7일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에 대해 “(김정은에게) 실망스럽다”고 한 것도 체코 총리와의 회담 직전에 기자들이 쏟아낸 질문에 답한 것이다. 지난해 5월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도중 “북-미 정상회담이 안 열릴 수도 있다”며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것도 한 기자가 고함치듯 물어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현안에 대한 생각을 자주 밝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마냥 피해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묻는 쪽이나 답해야 하는 쪽 모두 경험이 없을 뿐이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경우에서 보듯, 팩트를 향해 날것 그대로 던진 질문과 즉석에서 나오는 생생한 답변은 종종 예상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 마침 문 대통령이 10일부터 동남아 3개국 순방에 나섰다. 80여 명의 기자도 동행하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육성을 통해 듣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미 비핵화 중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미국의 반대에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것인지, 올해도 소득주도성장 계속할 건지…. 간담회라도 한다면 정해진 영역의 질문만 받지 말고 격식을 깨고 시원하게 답했으면 좋겠다. 기자들도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류의 인사는 나중에 하고 송곳처럼 파고들어야 한다. 본보가 우리 속의 관행과 구습을 되돌아보기 위해 화제 속에 연재하고 있는 신예기(新禮記)는 제사나 명절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