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IT 도시로 탈바꿈한 예테보리에서 현재 또 하나의 실험적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은 ‘영원한 고용’, 2026년 완공되는 코르스베겐 기차역에서 일할 종신 직원을 뽑는 것이다. 이 직원이 할 일은 아침마다 출근해 승강장 형광등을 켜고, 해가 지면 불을 끄고 퇴근하는 게 전부다. 출퇴근 사이엔 영화를 보든, 잠을 자든, 역 밖에 있든 상관없다. 월급은 2만1600크로나(약 260만 원). 여기에 연봉 인상, 휴가, 퇴직연금까지 보장된다.
▷별다른 자격 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이 일자리는 코르스베겐역 디자인 공모전에서 당선된 스웨덴 예술가 2명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이들의 응모작에는 자신들이 설계한 역사(驛舍)에 이 ‘비생산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 콘셉트로 포함돼 있다. 이들은 상금 700만 크로나(약 8억4000만 원)로 재단을 만들고 돈을 굴려 직원 월급을 충당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인간이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위협이 커지고 있다. 우리도 머잖아 코르스베겐역 직원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이 밝힌 프로젝트의 취지다.
▷AI 시대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은 이 실험을 두고 “세금 낭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노동의 본질과 가치를 고민케 하는 예술적 표현”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등 끄기 일자리는 최근 한국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빈 국립대 강의실의 불을 끄는 일자리를 만들어 1인당 32만 원의 월급을 줬다. 이런 공공 일용·임시직 일자리 5만여 개를 만드는 데 쓴 예산만 1200억 원. 기술 발달에 따른 ‘노동의 종말’을 경고하려는 스웨덴과는 불끄기 일자리를 만든 취지와 철학이 달라 씁쓸하기만 하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