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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근거 없는 백신 거부, 아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입력 | 2019-03-12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전 세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 홍역 때문에 하루에 약 300명이 사망하고 있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홍역 환자가 발생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또 유럽과 미국에선 유아들이 유난히 많이 홍역에 걸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60명 이상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해외 유입인 것으로 추정된다.

홍역은 몇몇 국가에서 영영 사라진 질병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일부 부모는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다. 집단의 면역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백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말, 홍역(Measles)과 볼거리(Mumps), 풍진(Rubella)을 뜻하는 이른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이 과학 학술지 ‘랜싯’에 실렸다. 당시 태어났던 유아들은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부모들에 의해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못했다. 과학에 대한 불신 혹은 배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전 세계 10대 보건 위협 중 하나로 백신 기피 현상을 꼽았다.

16일은 홍역 백신의 날이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홍역은 특히 면역체계가 약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어린이들을 사망이나 장애에 이르게 한다. MMR 백신은 안전하고, 접종자의 90∼95%가 효과를 본다.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않으면 90%가량이 홍역에 걸릴 수 있으며 폐렴, 설사, 중이염 등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때 홍역을 앓았다. 그때 정말 좋아했던 짜장면을 먹어도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

2017년 11만1000명이 홍역 때문에 사망했다. 대부분 5세 이하 어린이였다. 홍역 백신은 2000년과 2017년 전 세계 2210만 명의 아이를 죽음에서 구했다. 홍역의 첫 증상은 대개 고열이다. 홍역에 감염되면 10∼12일 새 눈이 붉어지고 발진이 생긴다. 홍역의 한자 ‘紅疫’은 좁쌀 같은 붉은 종기들이 생기는 전염병을 뜻한다. 홍역의 영어 단어는 고름, 물집을 뜻하는 중세 독일어 ‘masel’에서 파생됐다. 홍역은 주로 기침과 재채기 및 감염 부위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발생한다.

WHO는 2018년 전 세계적으로 홍역이 증가한 이유 중 30% 정도는 백신 기피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역은 집단 면역의 적정선이 무너지면 금세 확산 가능한 질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MMR 백신의 두 차례 무료 접종을 실시했다. 몸의 면역체계는 홍역 바이러스를 영원히 기억한다.

‘백신(vaccine)’이란 말은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1749∼1823)로부터 유래했다. 그는 소의 발진성 피부질환인 우두(牛痘) 농포에서 고름을 짜 소년의 팔에 직접 주입하는 실험을 하며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천연두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인류를 절멸의 벼랑으로 몰았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런데 지금 백신에 대한 기피가 있듯 당시에도 우두접종법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제너의 방법은 입증되며 결국 많은 사람을 살렸다. 면역학의 아버지였던 제너는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백신이란 말을 고안해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난해 여름 로타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한 4개월 된 아이가 장이 말려들어가는 장중첩증과 장이 막히는 장폐색을 일으켰다며 백신 거부 운동의 확산에 대해 서술했다. 이 백신을 맞은 경우 10만 건당 1∼5번 정도 장폐색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은 로타 바이러스 자체에 의해 감염돼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이 백신과 부작용의 관계는 입증하기 쉽지 않다. 백신 거부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신 때문에 자식들이 심하게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다. 그들에겐 백신의 부작용이 과학인 셈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2017년 야외에서 놀던 아이가 사고로 이마가 찢어졌는데 파상풍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집에서 소독하고 상처를 꿰맸으나 6일 후 턱이 움츠러들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도 통제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파상풍 및 여타 백신을 맞은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중환자실을 비롯해 8주간이나 병원 신세를 지며 수억 원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의 부모는 이런 일을 겪고도 아이에게 백신 맞히는 것을 거부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감정의 호소 등에 휩싸여 백신 정책에 반감을 표하고 있다. 백신은 분명 과학이지만 백신의 유통과 보급, 기피와 거부엔 인간이 있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