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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주의 투자로 대박? 티끌 모아 태산 만들어야”

입력 | 2019-03-13 03:00:00

[투자 고수의 한 수]이현경 미래에셋자산운용 전무




미래에셋자산운용㈜ 금융공학부문장 이현경 전무는 “고객의 자산을 불려주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는 타고난 펀드매니저다. 어려운 금융공학 이론을 내세우지 않고 투자의 기본을 강조한 그는 “대박을 원한다면 티끌 모으듯 조금씩 수익을 모아 가라”고 조언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많이 벌고 적게 잃는 것이 투자의 정석이다.”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최근 만난 미래에셋자산운용㈜ 이현경 금융공학부문장(47·전무)의 투자 원칙은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간단했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 평범함 속에 진리가 숨어 있었다.

금융공학부문은 수학적 통계적인 기법을 이용해 투자 종목을 발굴하는 퀀트(계량 분석) 투자를 담당한다. 그는 “일반 주식형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직접 종목을 발굴한다면 퀀트주식형 매니저는 일정한 기준으로 종목을 분류한 후 조건에 맞는 종목 중심으로 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식형펀드 매니저는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듯 자신이 발굴한 종목에 애착을 갖는 반면 퀀트주식형 매니저가 종목을 분류하는 기준은 교사가 학생을 객관적인 눈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 ‘운동 잘하는 학생’ 등으로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티끌 모아 태산 만들어라

이 전무는 많이 벌려면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돈을 조금씩이라도 벌어 계속 쌓아 가다 보면 결국 많은 수익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그는 “이 방법은 주가지수가 오랫동안 박스권을 오르내리는 지루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식 투자로는 결코 태산을 이룰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런 투자 철학에 가장 부합하는 펀드는 인컴(수입)형 펀드다. 이 펀드는 채권이나 부동산투자신탁(리츠), 배당주 등에 투자해 일정 기간마다 수익 또는 이자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전무는 “이런 수입을 계속 쌓아 가다 보면 장기적으로 초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서 “리스크를 많이 감수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수익을 올리기를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걸맞은 펀드”라고 설명했다.

이 전무가 이런 취지로 기획해 2012년 3월에 내놓은 상품이 바로 미래에셋배당프리미엄펀드다. 이 펀드는 설정 이후 매년 안정적 수익률을 올린 덕분에 꾸준한 인기를 끌어 현재 순자산가치 1조3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개인연금 및 퇴직연금 펀드, 월지급식 등 전체 라인업을 합하면 모두 2조 원이 넘는다. 단일 펀드 기준으로 국내 최대다.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8% 안팎의 수익을 올렸다.

이 펀드의 장점은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도 꾸준한 수익을 실현한다는 데 있다. 배당수익률이 높은 성향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덕분이다. 여기에 콜옵션 전략을 병행함으로써 추가 수익을 확보한다. 콜옵션 전략에 따라 주식시장이 하락하는 경우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다만 주가 급등 시 그 수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 버는 것만큼 잃지 않는 것도 중요

이 전무는 벌어들이는 것 못지않게 적게 잃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우선 주식이나 펀드 등 투자 대상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이 제대로 모르는 주식이라면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손실을 감수하고 매도해야 할지, 아니면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는 “펀드 역시 수입을 쌓아 가는 유형인지, 그렇지 않은지 등 그 특성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무는 또 투자 기간과 금액에 맞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하는 얘기지만 주가가 고공 행진을 한다고 해서 전세금 등 미리 용도가 정해진 돈을 빼서 잠시 투자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손 쓸 기회도 없이 손실을 본다. 반대로 퇴직연금의 경우 최소한 10년 이상의 투자 기간을 예상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전무가 투자의 기본을 이처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실천하기는 어렵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이 전무는 “말은 쉽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증권사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그런 예”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티끌 모아 태산’을 실행하는 첫 단계는 바로 이런 비합리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통계기법 이용 종목 발굴… 준비된 퀀트 투자 전문가 ▼

이현경 전무는 준비된 퀀트 투자 전문가다. 연세대 수학과 93학번인 그는 대학에서 퀀트의 기초를 닦은 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꿨다. 당시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밑에서 조교 일을 하고 이 교수 주도의 자산배분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자산운용업을 접하게 됐다. 2001년 초 미래에셋자산운용 입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입사 이후 그를 성장시킨 것은 엄청난 업무량이었다. 회사 초창기여서 일손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그 역시 가리지 않고 일을 도맡았다. 리스크 관리, 컴플라이언스, 성과 평가 방법 도입 등을 맡아 손색없는 리베로로 활약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늦은 밤인 날이 많았다. 그는 “그때는 힘들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시간에 자산운용업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되돌아봤다.

펀드매니저로서의 그를 단련시킨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당시 연기금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던 그는 주가 폭락으로 수익률이 급락하자 수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당시엔 기다리면 손실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속수무책인 상황이어서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털어놓았다. 그 경험 덕에 그는 리스크가 낮으면서도 운용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미래에셋배당프리미엄펀드 등 현재 운용 중인 펀드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의 취미는 야구. 4년 전부터 사회인 야구 4부 리그팀 2곳에 가입해 내야수로 뛰고 있다. 그는 “펀드매니저에게 숙명과도 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야구 예찬론을 폈다.

이 전무는 “고객 자산을 불려주는 펀드매니저 일이 너무나 즐겁다”고 말한다.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개발한 펀드 상품의 수익률이 좋을 때 느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고난 펀드매니저였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