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 정책사회부장
만약 이런 법이 생긴다면 학생과 학부모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 일단은 처벌이 두려워 법을 지키겠지만 뭔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것 같다. 눈앞에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이라면 책을 놓기가 더 망설여질 것이다.
이런 황당 규제는 소설에나 나올 법하지만 현실에도 구조가 엇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에 들어간 주 52시간 근로제다. 이 규제는 보건의료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모든 근로자가 예외 없이 주 52시간 이내로 근로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획일적이고 거칠다. 일할 자유가 일부 제한되는 측면을 들어 과거 야간통행금지에 비유한 ‘근로시간 통금’이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일할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한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헌법 제32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근로의 권리’에는 ‘더 일해서 더 버는 것’과 ‘덜 일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모두 허용되는 개념이라고 본다. 뒤집어 보면 ‘더 일해서 더 벌고 싶은 사람’과 ‘칼퇴근하는 사람들’을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한 울타리에 가두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근로자들이 처한 사정이 제각각인데 정부가 주 52시간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위반 여부를 단속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기업인들은 애로를 토로하고 있다.
지난 8개월 동안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결과를 보면 일부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근로자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상당 부분 달성됐지만 정부가 의도한 추가 고용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회사원들의 칼퇴근으로 기업의 회식이 많이 사라지면서 식당 등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그 결과 일자리가 더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서민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일자리 증가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면 즉각 보완하는 게 맞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앞에서 이대로 주저앉느냐, 재도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6·25전쟁을 겪고 잿더미에서 출발한 한국이 현재 세계 6대 수출강국, 11대 경제대국으로 압축성장한 것은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다.
일할 사람은 일하고, 쉴 사람은 쉬는 사회, 그래서 삶의 질과 성장이 균형을 이루는 활기찬 나라가 되는 것이 정부가 목표한 주 52시간 근무제의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업과 근로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3월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운용 기간을 충분히 늘려줘야 한다. 개편 방향은 우리의 경쟁 상대인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이 탄력근로제 운용 기간으로 시행하고 있는 최대 1년이다.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