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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안창호 선생 수감된 ‘대전형무소’ 터 재정비

입력 | 2019-03-15 03:00:00

[충청의 함성, 그 현장속으로]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 계획… 6월 말까지 ‘대전감옥소 특별전’



안창호 여운형 등 애국지사가 수감돼 있던 대전형무소 자리(중구 중촌동)는 지금 망루와 우물만 남아있다. 사진은 일제 강점기 당시 대전형무소 모습. 대전시 제공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대전 중구 오월드(동물원) 입구에서 오른쪽 길을 타고 승용차로 20분쯤 가다보면 천비산(해발 465m) 끝자락 왼편에 작은 초가 두 채가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언론인으로 활약하며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단재는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돼 전도양양한 미래가 보장됐음에도 그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했다. 그는 민족사관을 바탕으로 한 무정부투쟁을 주장하다 중국 뤼순(旅順)감옥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단재 생가와 기념관은 주변에 아무런 시설이 없어 오롯이 그의 삶에 몰입하기에 제격이다. 기념관에는 그의 출생과 학업, 언론활동, 독립운동, 임시정부 참가와 탈퇴, 무정부운동의 이력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다크 투어리즘(아픔이 담긴 역사적 장소나 재해 현장 등을 돌아보는 여행)의 현장이다.


아픔의 역사 대전형무소 터

대전 다크 투어리즘 1번지로는 중구 중촌동 현대아파트 근처 대전형무소 자리를 꼽는다. 이곳은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 등 비중 있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돼 있던 곳이다. 1984년 도시개발로 형무소가 대정동으로 이전하면서 대부분 시설은 철거되고 지금은 수감자를 감시하던 망루와 우물만이 남아있다.

대전형무소는 일제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돼 구금되는 사람이 많아져 수감시설이 부족해지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지었다. 3·1운동과 역사를 함께한 셈이다. 김창숙 선생은 이곳에서 오랜 수감생활로 다리를 못 쓰게 됐다. 몽양 여운형도 3년 동안 수감돼 있었다.

대전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곳의 망루와 우물을 비롯한 유적과 공원을 재정비해 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대전형무소와 관련한 역사적인 사실을 각종 고문서 등에서 발췌해 고증하고 전시 콘텐츠로 만들어 7월 마무리한다. 옛 충남도청 전시실에서 6월 말까지 ‘대전감옥소 특별전’도 연다.


함성 울려 퍼진 시장골목

대전의 3·1운동은 1919년 3월 3일 인동나무장터에서 시작됐다. 그해 3월 4일자 도쿄아사히(東京朝日)신문은 ‘대전 평양 황주 창원 진남포 원산 등지에서 폭민이 봉기하여 와석을 던지는 소요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3월 16일에는 인동가마니장터에서 만세의 함성이 터졌다. 이날 정오 양사고는 가마니더미에서 태극기를 꺼내 만세를 외쳤고 장운심 권학도 등 청년들이 태극기를 나눠주자 주위의 군중이 합세했다. 일제는 용두동 헌병대와 문화동 보병대를 출동시켜 총격을 가해 양사고를 포함한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성의 3·1운동은 이권수와 이상수의 주도로 같은 날 오후 1시경 유성시장에서 전개됐다. 이권수는 16촌간인 이상수와 협의해 이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달 31일에는 주민 2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막아서는 일병(日兵)이 공포를 발사하자 투석전(投石戰)으로 대항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4월 1일까지 14회에 걸쳐 3000명 이상이 만세운동에 참가했고 약 30명이 숨졌다.


애국지사묘역 자리한 대전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은 보훈의 최고 성지다. 서울현충원이 더 이상 안치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치자 1976년부터 조성해 1985년 현재 터 322만 m²(약 97만4000평)에 제2현충원을 지었다. 독립유공자, 전몰·전상·무공수훈·순직·공상 유공자 등 12만 위(位)가 안장돼 있다.

애국지사묘역 여섯 곳에는 현재 애국지사 3510명을 모셨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화가로서 3·1운동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른 도상봉 선생도 영면해 있다. 경관이 수려한 현충원 주변에는 총연장 10㎞가 넘는 보훈둘레길이 조성돼 있어 평소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묘역의 애국지사들 이름을 한 번씩 되뇌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