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사진기자와 영상기자들이 국회의원의 이동 모습을 앞다퉈 카메라에 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재명 기자
20대 국회의원 정족수는 300명이지만 신문, 방송에 등장하는 의원은 당에서 일정 직책을 갖고 있거나 대형 사고를 친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 외 의원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임기 4년 동안 언론에 한 번도 소개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초선의원으로부터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선배 국회의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국회의원이 어떻게 하면 사진에 찍히고 기사에 등장할 수 있는지 노하우가 있다는 거다. 그 초선 의원은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릎을 치게 됐다”고 했다.
첫째, 하수(下手)들은 사진 찍을 때 빨리 뛰어나가 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선수가 높은 중진 의원들이 오면 끝 쪽으로 점점 밀려난다. 본인이 주최한 행사가 아니라면 무작정 가운데 서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버티다간 다음 공천을 못 받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상수(上手) 또는 고수(高手)다. 이들은 스스로 기자들이 기사를 쓰거나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뉴스메이커가 된다. 기사가 될 만한 아이템을 찾아 기자들에게 주면서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언론에 나갈 확률을 높인다는 것. 귀찮은 몸싸움이나 눈치 볼 필요 없이 말이다.
기자생활 10여 년 동안 수백 명의 정치인을 만나본 경험을 돌이켜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사진기자들은 어떤 장면을 찍을까. 국회는 앉아서 하는 회의가 대부분이지만 단순히 수첩이나 자료만 읽는 것보다는 손 제스처나 준비한 자료를 눈에 띄게 보여주는 등 움직임 있는 장면을 노린다. 손은 책상 아래 고이 두고 입만 뻥긋하면 재미없는 사진이 되기 때문이다. 정적인 사진보다는 동적인 사진을 좋아한다.
기자들은 매일 열리는 회의에 앞서 의원들이 이동하는 모습부터 카메라에 담는다.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나 그날 뉴스에 맞는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사진기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다. 후보자가 답변 도중 물을 마시거나, 안경을 고쳐 쓰는 등 색다른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매년 국정감사에서도 새로운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의원들이 자료를 들어 보이거나 아니면 직접 시연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벵골고양이를 국정감사장에 직접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국민을 대표해 의정활동을 펼치는 국회의원들이 카메라보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더 의식했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천한다면 언젠가는 세상이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국민을 믿는다면 굳이 ‘하루하루 언론에 보도되는 것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