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입’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 “미국에 ‘(훈련)계속되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해” ● “‘평화체제 구축하려면 (훈련) 줄여주시오’라고 해” ●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도 미국에 최선 다해 요청하면 될 것” ● “김정은 위원장 비핵화 의지 갖고 있어” ● “문 대통령이 3차 북·미 정상회담 이끌어야” ● “김 위원장 양보 받아 트럼프 대통령 설득해야”
[박해윤 기자]
- 오늘도 미세먼지가 극심하네요.
“땅덩어리를 들고 어디로 이사 갈 수도 없고….”
“일부 언론이 거두절미하고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만 따서 편집하니 그런데….”
정 전 장관은 3월 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마련한 2차 북·미 정상회담 평가 간담회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월 28일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한 것이 회담 결렬의 신호였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한반도 문제에 관련해서는 매우 재수 없는 사람입니다” “인디언을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잘했다고 하는 백인 기병대장이 생각납니다”라는 정세현의 존 볼턴 인물평을 부각했다.
■“골대 옮기고 담장 높여”
- 어떤 배경에서 존 볼턴 보좌관을 그렇게 평가하는가요?
-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도 볼턴 보좌관이 고농축우라늄 의혹을 제기했죠. 경수로사업이 중단된 후 어떻게 됐나요?
“3자회담을 거쳐 6자회담으로 갑니다. 2003년 6자회담이 열리자 볼턴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꺼내요.”
- 볼턴 보좌관이 북한과 대화가 될 만하면 막았다?
“합의해놓으면 골대를 옮기고 담장을 높여요. 당시에 CVID는 말이 안 된다는 평가가 많았죠. 그러자 (볼턴이) ‘WMD(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이야기했어요. 그런 기억이 있으니까 이번 하노이 확대정상회담에 그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보는 순간 ‘저 사람은 판 깨는 용도인데’ ‘아, 오늘은 아니다. 오늘 아닐 뿐만 아니라 다음번도 좀 위험하다’고 깨달았죠.”
- 확대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은 3명이 앉았는데 미국 측은 4명이 앉았죠.
“원래 수를 맞추는 게 의전이죠. 볼턴을 ‘핀치히터’로 불러들인 거죠.”
‘봉투’를 들고있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
“그 사람은 봉투 들고 다니는 게 전공이에요. HEUP(고농축우라늄), CVID, WMD, HUMAN RIGHTS(인권) 봉투. 이번에도 들고 왔데. 하하하.”
- BIG DEAL(빅딜) 봉투.
“빅딜 봉투. 아이고. 봉투에 들어갈 정도니 플러스알파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심야회견에서 리영호 북한 외무상은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다 하나 더를 요구했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내용상 3~5개 되는데 그걸 다 공개하면 미국이 물러날 데가 없잖아요. ‘하나 더’ 정도는 북한이 들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죠. 빅딜에는 상응 조치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너는 악마니까 먼저 해라’, 미국이 리비아를 그렇게 비핵화한 뒤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한 거죠. 리비아 방식입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하노이 회담의 시작부터 결렬까지 전 과정을 전반적으로 복기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내세운 데엔 트럼프 대통령의 깊은 뜻이 있다고 정 전 장관은 풀이했다.
“지난해 3월 8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하자 45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결정했죠. 들리는 이야기로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년 동안 실무 관료의 말만 듣다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키워놓았다’고 말했대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합의문 순서도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로 돼 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가장 먼저 요구해온 미국 정부의 기존 스탠스와는 달랐다. 정 전 장관은 “이 합의문은 북한의 25년 논리를 미국이 받아들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습에서 벗어나 이런 합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역관 출신 최선희
- 그러나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합의문 이행에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 이행을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위임했죠.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3번 들락거렸지만 결국 결과가 안 올라오는 거예요. 여전히 국무부 사람들은 ‘선(先)비핵화’ 프레임에 갇혀 있었던 것이죠.”
-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을 내세웠다?
“국무부 경력이 별로 없고 사업가 마인드도 있는 비건을 데려와 ‘당신이 해. 내게 직접 보고해. 필요하면 폼페이오와 협의해’라고 했을 겁니다.”
- 북한은 비건 대표의 상대로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대리를 내세웠는데요.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을 폼페이오 장관에게 붙여놓고 여기에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합류시키니 옛날 방식 그대로 밀고 당기기만 한다고 본 것이죠. 본격적으로 핵을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군사 문제입니다. ‘정무적 판단뿐만 아니라 기술적 부분까지 잘하는 사람이 없나’ 찾아봤겠죠.”
- 한때 최선희 부상과 비건 대표가 실무 협의를 진행하다 김혁철- 비건 라인이 가동됐죠.
“최선희 부상은 통역관으로 시작했어요. 1993년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가 로버트 갈루치 미국 수석대표와 제네바 북·미협상을 할 때 최선희는 통역관이었어요. 한때 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딸입니다. 아버지 후광이 있죠. 최선희 부상 쪽도 정무 라인에서 크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이 약하죠. 비핵화를 하려면 기술적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협상을 해야 한다고 해서 찾은 사람이 김혁철이죠. 리영호 외무상이 ‘제가 키워놓은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했던 모양이에요.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군축 공부를 좀 했고 ‘대사’ 명칭이 붙은 경력도 있으니까 내세우는 데 무리가 없었고요.”
-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합의 이행을 서둘렀다?
“김 위원장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를 원해요. 그러려면 제재 완화와 투자 유치가 필요하죠. 트럼프 대통령은 차기 대선을 위해 뭔가 성과를 내야 하고요. 트럼프 대통령이 1월 7일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냅니다. 다시 시작하자고. 그러고 나서 비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거든요. 비건도 트럼프의 직할부대, 김혁철도 국무위원회 소속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할부대.”
■“대사관 꼭대기 층에서 합숙”
- 비건-김혁철 라인이 잘 가동됐나요?
“비건 대표가 판문점에서 김혁철 대표를 만날 것처럼 하더니 평양으로 올라갔죠. 트럼프 대통령이 ‘빨리 해’라고 지시하니 평양에 갔겠죠. 비건- 김혁철은 2박3일 협상한 뒤 하노이 회담을 위한 12개 의제를 조율했어요. 12개란 결국 3개 분야에서 4개씩 정도라는 이야기고. 정상회담이 2월 27일 오후부터 열리는데 둘은 하노이에서 2월 25일 오전 30분 만나고 실무 협상을 끝냈단 말이죠. 이날 오후엔 협상을 안 했어요. 26일에도 깨끗이 놀았고, 27일 오전에도 놀았어요. 마무리가 안 됐으면 이렇게 느긋할 수 없죠.”
- 그러네요, 세계적 이벤트인데.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갈기를 세우고 발톱을 드러내고 최선을 다해 습격합니다. 시험 보는 사람은 시험 감독관이 들어와 책 집어넣으라고 할 때까지 봅니다. 25일 오전 30분만 회의했다는 걸 보고 저는 ‘다 됐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또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친교 대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우리 대화를 문서로 만들었으면 돈을 내고 보고 싶을 것’이라고 했어요. ‘역시 비건을 내세워 직영 체제로 하니까 속도가 빠르구나’ 여겼죠.”
- 비건-김혁철이 회담 장소도 결정했겠죠?
“그렇게 했다고 봐야죠.”
- 베트남 내에서도 하노이와 다낭이 함께 거론됐는데요.
“저는 처음부터 다낭에선 열리지 않을 것이라 봤어요. 북한은 다낭에 좋은 기억이 없어요. 1964년 베트남에 처음 파병된 한국 맹호부대가 도착한 곳이 거깁니다. 통킹만 사건 이후 미군이 들어온 데도 거기고요. 한·미군이 월맹을 공략한 곳이니 월맹과 비슷한 처지인 북한에는 내키지 않죠. 북한은 하노이 대사관도 간신히 유지해요. 대사관 직원들은 대사관 건물 꼭대기 층에서 합숙하면서 살죠. 높은 사람들이나 가족을 데리고 오지, 대부분은 기숙사 생활 하듯이 해요. 동남아시아의 우리 해외 주재관들처럼 좋은 아파트나 저택에 못 살아요. 총영사관도 없는 다낭은 북한에 부담이 됩니다. 차량으로 거기까지 이동하기도 불편하고요. 북측이 ‘거긴 못 가겠다’고 그랬을 겁니다.”
■“기름을 어디에서 대나?”
김 위원장이 기차로 평양-하노이를 왕복했다. 참매1호라는 전용기도 있는데 항공편을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참매1호가 비행거리가 길지도 않지만 기름(항공유)을 어디에서 대나?”라고 말했다.
- 북한이 그 기름도 없나요?
“석유가 들어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놓고 비행기 타고 오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고 ‘이번에 한해 오고가는 데 필요한 석유 줄게’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기차 타고 온 것이죠. 중국이 전철화돼 있어서 전압만 조금 조정하면 특별한 에너지 공급 없이도 엔진이 돌아가니까요. 베트남에서부턴 자동차로 이동한 것이고요.”
하노이 회담 과정에서 ‘스몰 딜로 북·미가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신 미국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허용한다는 게 골자였다.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두는 데에 합의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라도 보장이 된다면, 이런 스몰한 것이라도 북한으로선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 금강산 관광으로 북한에 연 1억5000만 달러를 현금으로 주지 않나요?
“처음 시작할 때 연 1억5000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가 관광객당 100달러로 바꿨죠. 개성공단으로 북한에 지급하는 돈은 연 1억 달러가 안 될 겁니다.”
- 북·미 실무선에서 합의문도 만들었다고 보나요?
“그렇다고 봐야죠.”
- 스몰 딜로?
“내용은 알 수가 없어요. 핵물질, 핵무기, 핵시설, 핵기술, 핵투발수단 5가지가 없어져야 비핵화죠. 이것을 다 내놓는 것은 빅딜이죠. 스몰 딜은 이현령비현령이라 설명력이 높은 개념은 아니죠. 좌우간 북·미가 서로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합의했다고 봐야 하는 거고요.”
- 그럼에도 최종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2월 27일 저녁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를 해주려고 했는데 28일부터 이대로 가선 안 되겠다고 돌아선 것 같아요. 없던 일로 할 순 없고 다음번에 보자는 식으로요. 미국 측으로선, 다음번으로 넘기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북한이 합의를 안 하게 만드는 특효약을 내놓는 게 좋겠죠. 폼페이오는 ‘나는 못 합니다. 볼턴을 쓰십시오. 볼턴의 전공입니다’라고 했겠죠. 결국 볼턴이 고농축우라늄시설 의혹 등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밀면서 합의가 불발된 것이고요.”
- 회담 결렬 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쇄 대가로 제재 거의 대부분을 풀어달라고 요구해서 들어줄 수 없었다’고 말했는데요.
“그건 일이 그렇게 되고 난 뒤에 자기정당화가 필요하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고요. 2월 25일 북한이 실무 협의에서 그렇게 요구했다면 그 협의가 25일 오전에 끝나지 않죠. 그것(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은 맞지 않아요. 확대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영변 핵시설 플러스알파를 요구했는데 그 플러스알파가 엄청나게 크니까 북한은 5가지 유엔제재 해제를 요구했을 겁니다.”
■“밤새 트럼프 변심”
- 실무 협의에서는 무엇을 합의했을까요?
“‘영변 핵시설 폐쇄와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 정도로 합의하자. 다음 단계는 그다음에 보자’는 식으로 합의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워싱턴의 움직임이 너무 빨리 나왔어요. 하노이 회담 기간에 하원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이던 마이클 코언이 트럼프 대통령 비리 의혹을 폭로했죠.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과거에 잘못한 것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걸 덮을 수 있는 성과가 나기 시작했고 이걸 계속하면 북핵 문제의 입구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와라’라고 하고 싶었겠죠. 그러나 하원을 장악한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가 이런 식으로 국내 정치에 북핵 협상 결과를 사용할 기회를 주면 내년 대선까지 이어진다고 계산했을 겁니다. 초동 단계에서 잘라야 한다고 생각해 하노이 회담 도중에 청문회를 열었다고 봐요.”
- 27일 밤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코언 청문회가 장식했습니다.
“TV쇼를 진행한 감각을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잘 안 됐다고 해야 코언 청문회 뉴스를 덮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27일 만찬 이후 28일 오전 단독정상회담 이전 심야새벽시간에 워싱턴의 움직임을 보고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을 바꿨지 않나 생각해요.”
- 김정은 위원장은 확대정상회담에서 ‘영변과 금강산- 개성을 맞바꾸는 걸로 실무진이 합의했으니 이 합의대로 정상끼리 합의하자’고 밀고 나갈 수 없었을까요?
“미국이 영변 외에 강선의 고농축우라늄시설을 꺼낸다든지 핵무기 이외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꺼낸다든지 하면서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플러스알파 베타 감마 델타를 요구한 것으로 보여요. 그러니 북한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론 안 되고 유엔 대북제재 11개 중 5개를 풀어달라고 했겠죠.”
- 북한이 영변 폐쇄 대가로 대북제재 5개 해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누울 자리 봐서 다리 뻗는 데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어요. 미국을 오랫동안 상대해봐서 상대가 들어줄 만한 말을 합니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지 않아요. 미국의 영변 플러스알파가 워낙 커서 북한이 상응 조치로 유엔제재 5개 해제를 요구한 것이냐, 아니면 처음부터 북한이 영변 폐쇄의 상응 조치로 유엔제재 5개 해제를 요구한 것이냐. 이것을 알려면 김영철 부위원장과 김혁철 대표의 말도 들어봐야 합니다.”
-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결렬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을까요?
“예견하지 못해 많이 놀랐겠죠. 실무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잘 해줄 것 같습니다’라고 했겠죠. 그래서 김 위원장은 느긋하게 66시간 기차를 타고 하노이에 온 겁니다. 그러나 미국 국내 정치가 트럼프로 하여금 변심하게 했어요. 김 위원장이 이것까지 어떻게 예견했겠어요.”
- 북한은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추가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플러스알파는 예상했겠죠.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실무 협의 때 김혁철도 미국의 플러스알파에 대해 탐색했을 겁니다. 그러나 미국은 세게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비쳤을 것입니다.”
- 북한 강선에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만드는 시설이 있을까요?
“강선에 우라늄농축 시설이 있을 순 있어요. 그러나 저농축인지 고농축인지에 대해선 미국이 아직 이야기를 안 하고 있죠.”
■“대내적으로 별 영향 없어”
- 이번 회담 결렬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어느 정도 피해를 줄까요?
“대내적으로는 별 영향이 없습니다. 북한 언론은 김 위원장을 웬남(베트남) 공식 방문을 성과적으로 끝낸 개선장군으로 만들었어요. 설사 입소문이 나더라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책임을 넘겨도 되고 이런 점에서 희생양을 찾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김 위원장이 이렇게 하면 대안이 없습니다. ‘강을 건너가는 중간에는 말을 바꿔 타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지금 그렇게 하면 누구를 데리고 일하겠어요?”
- ‘시간이 김정은 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시간이 김 위원장 편이 아니죠. 2016년 5월 36년 만에 당 대회를 열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채택하면서 인민들에게 ‘잘살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3년이 흘러가 버렸어요. 실적 없이 시간이 자꾸 가고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급해요. 협상력이 있는 카드를 만들기 위해 핵 실험하고 미사일 발사를 했는데, 오히려 제재만 더 들어왔단 말이죠.”
- 5개년 계획에서 성과를 못 내면 어떻게 되나요?
“쫓겨나진 않겠지만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떨어지겠죠.”
- 미국이 이것까지 계산하고 밀어붙이는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는데, 북한은 자신이 5개를 내놓으면 미국도 5개를 줘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 미국은 ‘어떻게 등가로 교환하나?’라고 하죠. ‘내가 2개 줄게. 5개 내놔’라고 하죠. 이런 식으로 미국은 살아왔어요. 최악의 경우엔, 북한은 이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 이제는요?
“이제는 그렇게 해야죠. 2월에 북·미합의를 봤다면 3월부터 2020년 12월말까지 22개월 동안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재개돼 좀 더 부드러워졌겠죠. 이런 흐름이 나타나면 중국은 국가급 무역은 아니지만 성급 무역은 풀어버릴 겁니다. 이건 잡히지도 않아요. 단둥 신의주 중조우의교가 유일한 통로는 아니거든요. 상류로 가면 얼마든지 바짓가랑이 걷고 거래할 수 있어요. 짧은 다리도 많고 인공위성에 잡히지도 않아요. 그런데 북·미합의가 틀어졌단 말이죠.”
몇몇 언론은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에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언제 외환 가지고 살았나? 북한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데 이골이 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너무하는 것’
- 일반 주민들은 그렇다 쳐도 평양의 지도층도 생활이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최고지도자 동지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너무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돼 있어요.”
- 김정은 위원장이 화가 나서 핵실험을 재개하면?
“그러면 죽는다는 걸 알죠. 비핵화를 하겠다고 한 사람이 핵실험을 다시 하고 미사일 실험을 다시 한다? 그러면 끝나는 거예요. 북한을 철저하게 더 틀어막을 것 아닙니까? 남북대화도 더는 못 해요. 희망이 없어지는 겁니다. 김 위원장이 이렇게까지 벼랑 끝 전술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 그러면 양보밖에 없다?
“양보밖에 없죠.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양보했다는 모양새는 만들지 않도록 해줘야 해요.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일은 문재인 대통령밖에 못 합니다. 북한은 남조선 대통령 핑계를 대야겠죠. 문 대통령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많다고 봐요. 능라도 경기장 공연도 ‘잡은 손 놓지 말고 민족번영 이루자’는 카드섹션으로 끝나더라고요.”
- 4차 남북 정상회담을 할까요?
“특사를 보내든지 고위급이 접촉한 뒤 판문점 정도에서의 원 포인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이런 정도로 합의할 수 있겠느냐? 김 위원장이 오케이하면 이걸 갖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겠다’라고 김 위원장에게 말할 수 있겠죠.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볼턴이 요구한 빅딜을 그대로 해줄 순 없어요. 그러면 북한은 ‘그냥 어렵게 살겠다. 다음 정부를 기다리겠다’고 나올지 모르죠. 차라리 고난의 행군을 또 하겠다고 할 겁니다.”
문 대통령은 3월 1일 ‘신한반도체제’를 발표했다. “하노이 회담이 잘될 것이라 봤을 것”이라고 정 전 장관은 설명한다. 신한반도체제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이렇게 풀이했다.
■‘냉면 발언’ 논란의 뿌리
[박해윤 기자]
-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모색합니다. 이를 두고 몇몇 언론은 문 대통령이 미국과 결별하는 것이라고 평합니다만.
“그건 워싱턴 주변 언론의 이야기고요. 그런 보도가 미국의 정책 그 자체는 아닙니다. 정책은 앞에 세우는 것과 속마음이 달라요. 버럭 화를 내면서도 조용한 데 가서 슬그머니 ‘빨리 해’라고 해요. 이런 게 있어요.”
-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대가나 조건 없이 재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좀 의아스러웠는데요.
“미국과 꾸준히 물밑 접촉을 했다는 이야기죠. 최고존엄이 그렇게 말했다가 안 되면 안 되니까요. 한국 정부도 이런 흐름을 알기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더해서 남북경협 덩어리를 내놓은 거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는 지렛대로 남북경협을 카드로 쓸 수 있으면 쓰라’고 한 거죠.”
- 북한도 남북경협을 원하겠죠?
“북한은 개성공단에도 한국 대기업이 들어오기를 원했어요. 개성공단이 들어선 후 북측은 ‘쇳조각 들고 와서 냄비나 두들겨 만들고 뭐 하는 거냐?’고 화를 내기도 했어요. ‘우리는 첨단 기술이 들어오기를 바라고 군사기지를 경제공단으로 내놨는데 이게 뭐냐?’는 것이었죠. 냉면 발언 논란도 뿌리가 있는 셈이죠.”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방북한 대기업 총수들이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라고 발언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 문 대통령이 계속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에 힘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디딤돌을 놓기 위해서죠. 대기업의 대북 투자를 이야기하면 자유한국당에서 가만히 있겠어요? 아무것도 안 줬는데도 퍼주기라고 그러죠.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더라도 한국이 치고 나가면 미국이 말리진 못할 것이다. 이 정도라도 해야 한국이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려낼 힘을 갖게 된다. 이렇게 치고 나가는 모양새를 보여줘야 북한도 한국 말을 들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작용했을 것으로 봐요.”
-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는 가능합니까?
“통일부 장관이 미국과 협의해보겠다고 했는데, 덕담으로 한 말은 아닐 겁니다. (미국과) 사전조율 내지 사전타진은 했을 것이고요.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은 북한 비핵화부터 하겠다는 취지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시작하겠다고 한 겁니다. ‘북한 비핵화도 안 됐는데 경제 지원부터 하나?’ 이렇게 하면 끝없는 선후 논쟁밖에 안 돼요. 이것(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으로 시작해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죠.”
■“끝없이 미세먼지 속으로 들어갈 수도”
- 미국은 반대하지 않을까요?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기다려봐야죠. 미국과의 협상 경험으로 보건대, 우리가 간절하게 이야기하면 미국이 듣습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그래요. 미국의 반대 때문에 2003년 개성공단을 시작도 못 할 뻔 했어요. 처음엔 미국이 안 된다고 그랬어요. 미국 기술이 10%만 들어 있는 기계도 미국 상무부의 허락 없인 미국의 적성국에 반출 못 해요.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웬만한 기계에는 미국 기술이 10% 이상 들어있었죠. 우리 정부가 허락해달라고 하자 미국 정부는 안 된다고 했어요. 당시 통일부 장관인 제가 당시 통일부 조명균 교류협력국장에게 ‘당신이 미국 상무부에 직접 가서 설득하라’고 했어요.”
- 그랬더니?
“미국이 안 된다고 또 거절했다고 해요. 보름 후에 제가 ‘또 가서 간절하게 이야기해보라’고 했죠. 결국 됐습니다. 그래서 개성공단이 가동된 겁니다. 이번에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로 북한 비핵화를 촉진할 테니 일단 눈 감아 달라고 그러면 아마 미국이 들어줄 겁니다.”
정 전 장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와 비건을 앞세워 북·미협상의 불씨를 살려내느냐 아니면 볼턴을 앞세워 계속 압박하느냐에 따라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과 북한의 장래가 결정된다고 한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디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할 수도 있고 남·북·미 관계가 그냥 끝없이 미세먼지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습니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봐야죠. 미국 정부가 그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을 시작한 것 아닙니까? 김정은을 못 믿겠으면 트럼프를 믿으면 됩니다. 없는 정보가 없는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로 결심하기 전에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발언의 진정성을 얼마나 체크했겠어요? 말과 행동의 진정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한 거죠.”
- 상당수는 여전히 ‘김 위원장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남으려 한다’고 믿습니다.
“미국이 심어놓은 대북관에 익숙한 사람들은 북한의 말을 믿지 않아요. 결국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미국이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김 위원장도 문 대통령한테 ‘우리가 미국을 속이면 미국이 우리를 가만두겠습니까?’ 라고 했잖아요.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인정했기에 회담장에 나온 것이고요. 속이고 적당히 금강산과 개성 풀고 끝내면 북한 경제는 못 살아납니다. 외국에서 투자가 들어가야 해요. 세계은행 등이 북한에 장기저리 차관을 제공해 사회간접자본을 개발하지 않으면 북한 내 22개 경제특구를 활성화할 수 없죠. 한국만으론 그런 돈이 없어요. 일본 자금도 들어와야 해요.”
■“너무 싸게 쳐주려고 하지 말고”
정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은 비핵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본다. 그 사람 말의 진정성과 처한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으로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 재임할 때 이 문제를 끝내야 한다. 1기 트럼프 행정부와 해결해야 한다. 다른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해준 정도도 안 해줄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해가 떠 있을 때 건초를 말리라’는 서양 속담대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에겐 ‘밀당’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는 게 정 전 장관의 판단이다.
“그러나 미국은 만만하다고 생각해 값을 너무 싸게 쳐주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체면 세워주면서 북한이 비핵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좀 넉넉하게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설득할 수 있는 사람도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어요.”
- 북한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주면 북한은 무엇을 내놓는 게 합당하다고 보나요?
“영변 핵시설 폐기에다 하나를 더 내놓아야겠죠. 그것이 강선의 고농축우라늄시설일 수도 있고 핵물질 리스트 신고일 수도 있고요. 그건 협상에서 결정할 일이죠. ‘상응 조치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북한에 들어온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립니다. 이렇게 되면 비핵화로 갈 수밖에 없죠.”
- 최근 미국 전문가들은 영변 핵시설을 ‘썩은 돼지고기’라고 말합니다. 가치가 별로 없는 낡은 시설이라는 건데요.
“그동안 미국은 ‘영변이 북한 핵능력의 80%’라고 했어요. 그런데 북한이 영변을 폐기하겠다고 하니까 이제 와선 50%밖에 안 된다고 해요. 그러면 안 되죠. 핵시설이 없으면 앞으로 핵무기를 못 만드는 것이고, 영변 핵시설 폐기는 미래 핵을 포기하는 것이죠.”
■“협상의 배선 문제”
-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프로세스인 핵물질 리스트 신고를 꺼리지 않나요?
“그러려면 ‘비핵화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왜 했겠어요. 한국으로선 어떻게든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해요. 북한은 비핵화로 가지 않으면, 핵물질도 내놓고 핵시설도 폐기하고 핵무기도 폐기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상응 조치를 보장해줄 나라는 미국밖에 없어요. 북한의 논리는 ‘미국이 종전하고 불가침만 보장하면 우리가 왜 핵을 갖고 어렵게 살겠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죠. 비핵화의 대가로 미국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외에 불가침을 보장하기 위한 종전선언, 평화협정, 북·미수교죠. 상대의 약속을 믿고 상대의 약속에 상대를 구속하기 위해 협상을 하는 겁니다. ‘비핵화를 안 할 거다’ 하는 식이면 처음부터 협상을 하지 말아야겠죠.”
-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약속을 받아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할까요?
“이건 협상의 배선 문제입니다. 잘못 건드리면 합선돼 터지는 거고 잘 연결하면 전기가 통해 기계가 돌아가는 것이죠. 배선의 내부 구조를 모르는 사람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고요.”
■“돈 때문만은 아니고”
정 전 장관은 “그렇게 만들려면 문 대통령이 북한을 잘 설득해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양보안을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앞으로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의 승인 문제는 우리가 간절히 이야기하니까 되더라”라면서 중단된 한미연합훈련(키리졸브 연습-독수리훈련-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사례를 언급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도 우리가 간절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저렇게 된 겁니다. 언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돈 때문에 안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려면 미국의 대북 군사 압박이 해소돼야만 협상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우선 그런 환경부터 만들자고 해서 지난해 규모 축소식으로 이야기해놨다가 안 했고 올해도 안 하기로 했어요. 미국이 주판알 튕겨서 그만둔 게 아닙니다. 북한이 요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결국 중간에 있는 우리가 ‘우리도 좀 삽시다. 이거 계속되면 아무것도 못 하겠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하겠다고 했는데 한발이라도 나가려면 이것부터 좀 줄여주시오’라고 했기 때문에 미국이 들어주는 거죠. 미국이 들어주기 때문에 되는 것이죠. 처음부터 안 될 거야 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되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