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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정보보호 행안부 몫” 행안부“기업문제 잘 몰라”… 책임 핑퐁

입력 | 2019-03-19 03:00:00

[‘EU 신데이터법’ 공포]




스마트폰 잠금화면 광고를 만드는 스타트업 A사는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9에서 유럽 업체들과 사업제휴를 모색하다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고객이 어떤 광고나 콘텐츠를 주로 보는지 파악하려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법(신데이터법)에 저촉될 수 있어서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된 신데이터법 규제 때문에 기업들은 과징금 폭탄을 맞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사실상 손을 놓았다.

○ EU가 세운 데이터 거래 장벽


지난해 5월 25일부터 시행된 신데이터법은 개인정보를 해외로 반출하거나 활용할 때 개인의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잊혀질 권리’인 삭제권도 신설돼 개인이 동의를 철회하면 정보를 수집한 기관이 해당 정보를 바로 지워야 하는 의무도 생겼다. EU가 역외 기업에 대해 ‘데이터 거래 장벽’을 세운 셈이다.

정보통신업계에서 신데이터법은 ‘역대 최강의 개인정보 규제’로 통한다. 법 위반 시 최대 2000만 유로(약 260억 원) 혹은 전년도 전 세계 매출액의 4% 중 더 큰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가령 영국 인터넷서비스기업 ‘토크토크(Talk Talk)’는 2015년 10월 고객 약 15만7000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로 당시 개인정보 관련 최고액인 40만 파운드(약 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신데이터법이 적용됐다면 과징금은 7400만 파운드(약 1100억 원)까지 치솟는다.

신데이터법은 유럽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도 적용된다. 한국 기업이 유럽에 설치된 지점이나 지사를 통해 현지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지점이 없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유럽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신데이터법을 따라야 한다.

○ 각자도생 나선 기업들

신데이터법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업체들에는 코앞에 닥친 위협이다. 올해 1월 구글을 시작으로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들이 잇달아 신데이터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

구글은 이용자 맞춤형 광고에 개인정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 때문에 5000만 유로(약 64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3월엔 페이스북, 애플, 트위터가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 EU에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9만5000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됐고 현재 225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신데이터법을 잘 아는 글로벌 업체까지 EU의 제재 선상에 오르면서 한국 기업들은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개인정보 관리 규정이 워낙 방대하고 해석이 다양해 ‘EU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걸고넘어질 수 있는 규제’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일부 회사는 컨설팅 비용을 내고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유럽에 진출한 B금융사는 고객정보도 아닌 현지인 직원의 개인정보를 관리하기 위해 비용을 들여 다른 한국 금융회사들과 합동으로 신데이터법 컨설팅을 받아야 했다.

○ 정부는 아직 ‘강 건너 불구경’

해외에 나간 기업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느긋한 편이다. 신데이터법이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업체를 타깃으로 한 규제라서 한국 기업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정부는 국내 기업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유럽에 진출한 기업 중 얼마나 신데이터법을 준비하고 있는지 실태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해외 진출 기업을 총괄하는 산업부는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규정을 행정안전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산업부는 주무 부처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기업 민원이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창구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행안부는 “산업부로부터 유럽 진출 기업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기업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부처끼리 ‘핑퐁’ 하는 사이 기업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신데이터법이 이미 시행된 이상 한국 기업도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한다. 대기업과 달리 비용과 인력 문제로 신데이터법 대응을 충분히 하지 않은 중소·중견기업이 특히 취약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자문을 총괄하는 손도일 변호사는 “현지 직원이 해고당했을 때나 현지 기업과의 거래가 틀어졌을 때 고의로 당국에 신고할 수 있다”며 “EU 당국이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정하지 않아도 여러 경로로 신고가 접수되면서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EU의 제재가 한국 기업 코앞까지 온 상황”이라며 “산업부가 관망하지 말고 기업들에 새로운 법체계에서 주의할 점을 알리는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이새샘 / 신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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