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다룬 연극 ‘고독한 목욕’ 연출 맡은 서지혜, 주역 맡은 남동진
연극 ‘고독한 목욕’의 서지혜 연출가(왼쪽)와 남동진 배우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 앞에 서 있다. 두 사람은 “무대 위 소품은 단순한 편이지만, 꿈과 환상이 뒤섞여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무대효과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연극 ‘고독한 목욕’의 남동진 배우(47)와 서지혜 연출(40)은 작품 대본을 처음 접한 순간 느꼈던 감정이 ‘부담감’이었노라 털어놨다. 이념 갈등으로 벌어졌던 이 실제 사건은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 배우는 “아픈 역사를 무대에 옮기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 처음엔 배역 제의를 거절했다”면서도 “대본을 계속 읽다 보니 오히려 이 아픔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8일 막을 올린 뒤 ‘고독한 목욕’은 관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작품은 표면적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슬픔”이라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사건을 다룬 책과 자료를 읽고 치밀하게 공부했지만,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여건상 실제 피해자나 유족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극의 제목에는 치유와 고통의 의미를 동시에 녹여냈다고 한다. 남 배우는 “고문으로 고통받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상처를 목욕물로 닦아 치유하지만, 상처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장면은 유가족의 계속되는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서 연출도 “고문, 꿈, 환상 등의 파편화된 기억으로 혼란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도 치유와 고통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