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도입한 ‘산재관리의사’ 제도
국내 1호 산재관리의사인 임호영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장이 ‘중력 조절 보행 재활 시스템’으로 걷기 연습을 하는 환자를 살피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제공
A 씨는 2017년 공장에서 일을 하다 기계에 다리가 끼는 사고로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손상됐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A 씨는 사고가 난 지 8개월 뒤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뼈가 굳어버린 상태였다. 전아영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재활센터장(44)은 “골절 이후 뼈가 다 붙지 않은 상태라도 보행 연습을 해야 나중에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며 “재활치료는 수술치료 이후에 하는 게 아니라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상담부터 재활까지 모든 과정 지원
독일은 이미 1921년부터 ‘산재보험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산재관리의사 4100여 명이 연간 300만 명의 산재환자를 돌본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제도를 한국 현실에 맡게 벤치마킹했다. 산재관리의사는 처음 산재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 상담부터 담당한다.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고 향후 치료계획을 안내한다. 재활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일도 이들의 임무 중 하나다.
전 센터장은 “똑같은 절단 환자라도 모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대일로 환자를 돌봐야 한다”며 “주치의, 치료사, 임상심리사, 간호사 등이 매주 회의를 해 환자의 재활치료 과정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산재관리의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그만큼 산재 신청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산재 신청 건수는 13만8576건으로 전년(11만3716건)보다 21.9% 늘었다. 매년 11만 건 내외를 기록하던 산재 신청은 지난해 1월부터 사업주에게 재해 경위 사실을 확인받아야 하는 절차를 없애면서 크게 증가했다.
○ 민간 병원으로 산재의사 확대해야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의 전아영 재활센터장이 산재 환자의 상태에 맞춰 일대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처음 임명된 산재관리의사는 산재 환자의 초기 치료 단계부터 재활치료, 직업 복귀까지 전 과정을 관리한다. 안산=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공무원 박모 씨(36)는 2017년 12월 허리에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를 겪었다. 하지만 1년 뒤 직장 복귀에 성공했다. 수술 후 6주 만에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을 찾아 재활치료를 받은 덕분이다. 천장에 달린 벨트를 매고 레일을 따라 걷는 ‘워크메이트’, 물의 부력을 통해 걷는 ‘수중 보행풀’ 등 다양한 운동기구의 도움을 받았다. 박 씨와 같이 신속히 직장으로 복귀하는 사례를 늘리는 것이 산재관리의사 제도의 도입 취지다.
적기에 재활치료를 시작하면 치료 기간이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일을 사전에 막을 수도 있다. 산재로 인정받을 경우 치료하는 동안 사고 전 평균 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받는다. 문제는 휴업급여 지급 기간을 늘리기 위해 치료를 소홀히 하는 환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임 병원장은 “집중적인 재활치료는 환자의 후유증을 줄여줄 뿐 아니라 휴업급여 제도를 악용할 소지도 없애준다”고 말했다.
임 병원장은 또 “독일의 경우 산재가 나면 산재관리의사가 직접 현장에 투입돼 재해 여부, 환자의 중증도 상태 등을 판단하는 역할을 맡는다”며 “우리나라도 제도 안착을 위해 산재관리의사의 역할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환자가 산재관리의사가 있는 병원에 와야만 관여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중증외상센터로 유명한 아주대병원 등 민간 병원에도 산재관리의사를 임명할 예정이다. 산재관리의사가 있는 민간 병원은 현재 7곳뿐이다. 임 병원장은 “민간 병원의 산재관리의사가 재활치료가 특화된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도록 하는 선순환 체계가 작동한다면 현재 65%인 산재 환자의 직장 복귀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