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에 있는 것들을 합하여 해독해 보니 인간의 고난에 관한 알레고리였다. 인간의 고난을 핵심에 놓은 구약성서의 ‘욥기’처럼, 4000여 년 전의 점토판은 고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는 남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거짓말로 몰아가며 음모를 꾸몄고 친구들마저도 그에게 솔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들 풍족하게 잘사는데 그의 가족만 먹을 게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상을 받는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가난과 질병, 고통뿐이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소연할 곳은 신밖에 없었다. “신이시여, 얼마나 오래 저를 방치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로 두실 겁니까?”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물로 호소했다. “현인들은 죄 없이 태어난 아이는 없고, 죄가 없는 젊은이가 옛날부터 없다고 얘기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래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겁니까?”
신은 그의 고통과 눈물,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간절한 호소에 마음이 움직인 신은 그의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고 그를 보호해줄 천사를 보냈다. 병이 낫고 고통과 가난이 물러갔다. 욥기보다 적어도 1000년 이상 앞서 쓰인 스토리의 주인공은 크레이머에 따르자면 인류 최초의 욥이었다. 점토판의 설형문자는 욥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이유도 없고 부당하기까지 한 고난과 불행 앞에서 인간은 늘 망연자실했다는 것, 그리고 눈물은 미지의 절대자를 향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는 것. 이것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