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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윤신영]유사과학에 눈 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입력 | 2019-03-20 03:00:00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18일 오전 ‘전 세계 과학자 250명이 무선이어폰 전자파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호소문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포털사이트에서 인기였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가 여러 해에 걸쳐 2만5000개 이상의 관련 연구 결과를 검토해 “건강에 미치는 어떤 영향도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사안인데 이상했다.

알아보니 가짜뉴스였다. 과학자와 의학자에게 문의한 결과 기존 결과를 뒤집을 최근의 새로운 연구 결과는 없었다. 호소문을 썼다는 단체는 “호소문을 발표한 건 4년 전 일이다. 무선이어폰 제품에 대한 연구는 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지만 가짜뉴스의 탄생과 전파, 그리고 소멸을 하루 만에 목격한 기분이었다. 그 과정은 이렇다. 누군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담은 철 지난 뉴스를 발굴해 공유한다. ‘올드 뉴스’가 일부에 급속히 퍼진다. 사실이 아니므로 전파는 곧 멈춘다. 하지만 다시 어딘가에서 ‘부활’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이는 지난해 3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가짜뉴스의 전파 특징을 분석해 ‘사이언스’에 발표한 내용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짜뉴스의 가장 큰 특징이 ‘단타’다. 진짜 뉴스는 10만 명 이상에게 전달되며 ‘롱런’하는 반면에 가짜뉴스는 1000명 이하에게만 전파되는 데 그쳤다. 문제는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그룹은 소규모라고 해도 이런 소그룹 수가 많아 전체 공유 양은 진짜 뉴스를 두 배 이상 압도했다는 점이다. 전파 속도는 빨랐다. 기사의 정서는 자극적이었다. 이번 ‘무선이어폰 암 유발 괴담’과 딱 맞는다.

유사과학은 가짜뉴스와 궁합이 잘 맞는다. 믿고 싶은 것을 정당화하기에 과학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그래서 꽤 많은 가짜뉴스가 과학을 소재로 한다. MIT 연구팀의 결과를 보면 과학 분야 가짜뉴스는 정치, 지역(생활) 분야에 이어 세 번째로 공유가 많다.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 과학을 잘못 이용하는 상업적 유사과학이 쉽게 침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상업적 유사과학이 주는 폐해를 지난해 경험했다.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유사과학 탓에 음이온을 발생시키는 방사성물질을 넣은 매트리스, 속옷, 팔찌 등 생활제품이 유통됐고 그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사과학을 없애고 잠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가짜뉴스를 줄이기 위한 대책과 똑같다. 팩트 체크로 사실을 밝히고, 근거 없는 풍문이 사회를 좀먹지 않도록 합리적, 비판적 태도를 키우는 것이다. 무선이어폰 암 발생이나 음이온 건강설 같은 뉴스를 보면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먼저 살피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는 과학자나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남에게 맡겨 놓기엔 너무 위험한 일이 돼 버렸다. 피곤하지만 이젠 그래야 할 때다.

이 칼럼을 쓰는 지금도 어느 과학 기관 기자실에 앉아 형광등의 제품 소개 스티커를 노려보고 있다. 이렇게 적혀 있다. ‘참숯조명, 음이온 발생, 전자파 차단, 공기 정화.’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