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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의 재발견]〈94〉안일하다 vs 안이하다

입력 | 2019-03-20 03:00:00


‘안일하다’와 ‘안이하다’는 뭐가 다를까? 이런 질문은 국어 전문가조차 당황스럽게 만든다. 사전을 뒤져 둘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런 정리는 허무한 일이다. 일상적인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질 않는다. 이 차이를 외워 일상에서 그대로 쓴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다. 왜 그런가?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답하기에 앞서 ‘언제 이런 것이 궁금해지는가?’에 대한 대답부터 해보자. 글을 쓸 때라는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어휘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상황은 글을 쓸 때다. 그런데 글을 쓸 때 이런 고민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장을 만들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이 ‘안일하다-안이하다’ 수준의 미미한 의미 차이여서는 안 된다. 글을 쓸 때의 고민은 언제나 중요한 부분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주제와 관련되지 않은 단어 하나하나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주제의 깊이나 구조의 체계에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그 예외는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적 글쓰기에서일 뿐이다.

그래서 ‘안일하다’와 ‘안이하다’의 차이를 고민하게 되는 순간은 이를 문제로 만났을 때다. 질문을 받았거나 시험 문제로 만났거나 하는 순간 말이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이들 단어의 차이는 글쓰기에서도, 우리말 맞춤법을 아는 데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왜 그런가? 단어의 쓰임을 제대로 아는 쉬운 방법은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를 보는 일이다.

● 안일한 대처가 국민을 실망시켰다.
● 안이한 대처가 국민을 실망시켰다.

위 문장에서 두 단어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꼭 같은 의미의 단어를 두 개나 만들지 않는다. 비효율적인 일이니까. 그래서 엄밀한 의미의 동의어는 거의 없다. 비슷한 말만 있을 뿐이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 나태와 안일(○)을 반성해야 한다.
● 나태와 안이(?)를 반성해야 한다.

첫 문장은 어색하지 않지만 두 번째는 조금 이상하다. ‘안이(安易)’가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떤 시기에는 ‘안이’라는 단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안이’에 ‘-하다’가 붙은 말만 오늘날 남은 것이다. 그러니 ‘안일’과 ‘안이’의 한자를 따져 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안이’가 사라지면서 ‘안이하다’와 ‘안일하다’의 경계가 모호하게 변하고 말았으니까.

굳이 이들 의미를 구분해 쓰고 싶다면 우리가 실제로 쓰는 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 자주 쓰는 말 중에서 ‘일(逸)’이나 ‘이(易)’를 포함한 단어들을 살피는 것이 낫다. 일탈(逸脫)의 ‘일(逸)’을 찾아내고 평이(平易)의 ‘이(易)’를 찾아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시적인 어휘의 의미 차이보다 더 중요한 영역이 훨씬 많다는 점을 기억하자. 단어 두 개의 의미 차이를 따지는 힘을 더 중요한 본질적인 것으로 옮겨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