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에 타계한 샘 스니드(가운데)는 부드러운 스윙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60세에도 골프장 라커 천장에 발이 닿을 정도로 유연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PGA 홈페이지
안영식 스포츠전문기자
이동국(40·전북)은 6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중국 베이징 궈안을 3-1로 꺾는 데 선봉에 섰다. K리그 최고령 선수인 그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프로 데뷔 동기들은 모두 은퇴했고 프로팀 감독까지 맡고 있건만 현역으로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여자프로농구의 맏언니 임영희(39·우리은행)는 8일 역대 최초로 정규리그 600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소속 팀의 통합 6연패를 이끈 지난 10시즌 동안 결장한 것은 불과 4경기.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전설적인 골퍼 샘 스니드(1912∼2002·미국)가 보유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최다승(82승)과 최고령 우승(52세 10개월 8일) 기록의 핵심은 나이다. 100m를 11초대에 주파했다는 스니드는 50대까지 경기력을 유지했기에 최다승이 가능했고 최고령 우승 기록은 그 보너스다.
스니드가 새삼스럽게 조명받고 있는 것은 타이거 우즈(44)가 지난해 투어챔피언십에서 80승째를 거뒀고, 필 미컬슨(49)이 올해 AT&T 내셔널 프로암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PGA 최다승과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 치울 유력한 후보로 각각 우즈와 미컬슨을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골프 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즈가 최고령 우승 기록까지 경신하기에는 4차례나 수술을 받은 몸이 버텨줄지 불투명하고, 내년이면 50세인 미컬슨(통산 44승)이 최다승을 넘보기에는 남은 승수가 버겁다.
실제로 우즈는 이번 시즌 직전 인터뷰에서 “나는 다시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모든 것이 절정에 오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나의 우승 의지는 변한 것이 없다. 단지 몸이 기꺼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골프는 독특한 종목이다. 전년도에 4, 5승을 거둔 선수가 이듬해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지난주 우승한 선수가 이번 주에 컷 탈락하는 것이 골프다. 그렇기에 우즈와 미컬슨의 기록 경신은 현재로선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세계랭킹 13위 우즈는 잇따른 부상과 스캔들이 겹치면서 한때 세계랭킹 1000위 밖으로 밀려나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었다. 그 탓에 강력한 무기였던 ‘타이거 공포증’은 사라졌다. 이제는 우즈와 같은 조에 편성됐다고, 우즈가 리더보드 상단에 오른다고 지레 겁을 먹고 자멸하는 선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즈가 단순히 승수를 늘리기 위해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리즈 4개 대회와 같은 기간 또는 바로 앞주에 열리는 PGA B급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 한 해 9승까지도 거둔 우즈지만 이제는 한 해 1승을 올리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우즈는 2주 전 자신이 거둔 통산 승수의 10%인 8승을 수확한 ‘텃밭’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불참했다. 목 통증 때문이다. 앞으로도 부상 후유증은 번번이 우즈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메이저 최다승(18승) 보유자인 잭 니클라우스(통산 73승)와 벤 호건(통산 64승), 아널드 파머(통산 62승) 등 당대를 풍미한 선수들도 ‘나이의 벽’은 넘지 못했다. 그들이 PGA 정규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나이는 각각 46세와 47세, 44세. 전 세계랭킹 1위 비제이 싱(56·피지)은 이달 PGA투어 혼다 클래식에서 1타 차 공동 2위로 최종 4라운드에 나섰지만 불발에 그쳤다.
평균 은퇴 연령이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빠른 운동선수는 롱런이 최고의 재테크다. 그 요체인 자기관리는 결국 나이와의 싸움이다. 운동선수의 최대 난적은 라이벌 선수가 아니라 나이다.
안영식 스포츠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