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그릴데미그라스의 ‘비후까스’(왼쪽)와 ‘함박스텍’. 홍지윤 씨 제공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양식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시작된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해, 일곱 살 많은 대학생 언니를 따라나서며 첫 소풍을 갈 때처럼 설레었다.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지막이 클래식이 흐르고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 전등이 어둑한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윤이 반질반질한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니 흰 셔츠에 검은 나비넥타이를 한 웨이터가 다가와 존댓말로 주문을 받는다. 스파게티를 먹을까, ‘함박스텍’으로 할까 잠시 갈등에 휩싸였지만 그래도 양식인데 칼질을 하겠다는 각오로 ‘비후까스’를 먹기로 했다. “빵으로 하실래요? 라이스로 하실래요?” 밥 대신 라이스란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건 왠지 모르게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식기 전에 먹으라는 걸쭉한 크림수프에 따뜻하게 데워진 버터롤빵을 찍어 먹었다. 케첩에 마요네즈를 적당히 섞은 드레싱에 버무린 양배추 ‘사라다’와 함께 갈색소스로 반쯤 덮인 납작한 쇠고기 튀김과 밥그릇 모양으로 동그랗게 퍼 담은 쌀밥, 애교로 얹은 단무지가 올라간 큰 접시 하나를 야무지게 해치우고 나니 조금은 더 어른에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반찬거리로 남은 채소와 햄을 다져 넣고 볶은 밥에 노랗게 달걀을 부쳐 올리고 빨간 케첩을 뿌린 오므라이스, 소시지와 양파를 볶아 만능 양념 케첩으로 버무린 스파게티도 어쩌다 먹는 특별식이라고 좋아했던 시절의 얘기다.
○ 그릴데미그라스 서울 중구 삼일대로2길 50 오리엔스호텔 1층, 함박스텍 2만 원, 비후까스 2만5000원
○ 마크스(Mark‘s) 서울 강남구 언주로 168길 6, 오므라이스 2만4000원
○ 까사빠보(Casa Pavo) 서울 중구 소공로 63 신세계백화점건물 본관 6층 함박스텍 2만8000원, 클래식오므라이스 1만6000원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chiffonad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