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유발’이냐 ‘촉발’이냐 소송다툼서 큰 변수될 듯 2009년 스위스바젤 지진 관련 정부 인지 여부도 관건
20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지열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채 서있다. 포항지진정부공동조사단은 이날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 원인 조사 발표에서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은 지열발전소가 발전을 위해 물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촉발’지진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2019.3.20/뉴스1 © News1
포항지진 피해액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551억원, 한국은행은 3000억원 수준으로 각각 집계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손해배상 소송에 포항시민 전체가 참여하면 배상액이 5조~9조원에 달한다는 추정치도 내놓고 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포항 지열발전소는 지난 2010년 정부의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과제로 넥스지오 컨소시엄이 선정되면서 포항 북구 흥해읍 일대에 건설된 민·관 합동사업이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역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포항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으로 인한 유발지진으로 발표나자 포항 시민이 기뻐하고 있다. 2019.3.20/뉴스1 © News1
이번 지진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물 주입 등 사업의 전반적인 부분은 넥스지오가 맡고 있고 지상 플랜트 설계와 건설은 포스코가, 지열발전 정책 수립 및 사업화 방안은 이노지오테크놀로지 등이 각각 맡았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미소진동 계측시스템 구축과 모니터링·해석기술 개발을, 건설기술연구원은 시추 최적화 방안을, 서울대는 수리자극과 효율 극대화 모델 제작 등을 책임지고 있다.
참여 주체가 여러 곳이긴 하지만 국가연구개발(R&D) 과제로 추진된 사업인데다가 이로 인해 포항 지진이 촉발됐다는 정부 조사단의 조사 발표가 나온 만큼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지진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 인기척이 끊어져 한산한 모습이다. 2019.3.20/뉴스1 © News1
이 배상 주체와 배상 규모를 따지는 과정에선 전날 정부 조사단이 발표한 ‘촉발(triggered) 지진’이라는 결론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조사단은 지열발전소가 지진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을 준 ‘유발(Induced) 지진’이 아니라 지진 가능성이 높은 단층에 자극을 줘 간접적 원인을 제공한 ‘촉발(triggered) 지진’으로 한정했다.
다시 말해 일어나선 안 될 지진이 지열발전으로 생긴 게 아니라 언젠가 일어날 지진이 지열발전으로 인해 발생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유발과 촉발의 차이는 향후 배상 소송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자연지진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만큼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긴 힘들겠지만 법적 다툼 과정에서 정부로선 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도를 최대한 낮게 설정할 것으로 보여 이에 따라 과실 비율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 사업이 추진되기 불과 1년 전인 2009년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가 지진 유발 논란으로 전면 중단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사전에 지진 유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 여부다.
2017년 포항 지진은 발생 당시 135명의 인명피해를 냈고, 공식 재산피해도 850억원에 달했다. 집을 잃은 이재민만 1800명이 넘었고,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90세대, 200여명이 지역 공공시설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양만재 포항지진 시민대표자문위원은 “정부나 지열발전소 운영사인 넥스지오는 스위스 바젤에서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일어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포항시민에게 숨겼다”며 “포항시민이 실험대상인지 묻고 싶다”고 성토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전날 정부 조사단의 발표 직후 긴급 브리핑을 갖고 “현재 국가를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세종=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