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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우당탕탕]〈17〉‘한 우물 파기’를 거부했더니

입력 | 2019-03-22 03:00:00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작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예대 극작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극단에 들어가서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극단에서 3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다가 다시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연극배우를 하면서 난 꾸준히 글을 썼고, 좋은 배우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 책을 좋게 봐주신 선배 덕분에 라디오 작가를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운 좋게 라디오 작가가 됐는데 어느 날부터 TV 예능 프로그램 제작하는 곳을 기웃거렸더니 선배님들이 한마디씩 하셨다.

“한 우물만 파라. 너 그러다가 이도 저도 안된다.”

예전에는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일해야 ‘쟁이’라는 말을 들었고 최소한 10년은 해야 ‘프로’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연극배우도 찔끔, 라디오 작가도 찔끔 해놓고 또 TV 예능 프로그램을 기웃거리니까 선배들이 걱정스러운 맘으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렇게 나는 선배들 눈치를 보면서 TV 예능 프로그램에 노크를 하고 다녔다. 다행히 내 마음을 알아준 PD를 만나 TV 프로그램 작가를 하게 됐다. 낮에는 라디오 작가를 하고 저녁에는 TV 프로그램 회의하러 다니고…. 그렇게 밤낮없이 일했더니 어느새 나는 라디오와 TV를 넘나드는 몇 안되는 작가가 돼 있었다.

그런데 내 방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뮤지컬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나 제대로 할 것이지. 배가 불러서 저런다, 고생 좀 해봐야 한다”며 혀를 끌끌 찼다. 난 시간을 쪼개서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어떤 소재가 좋을까?’, ‘어떤 아이템으로 공연을 만들면 브로드웨이에 갈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끝에 ‘총각네 야채가게’라는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 작품은 도쿄에 있는 ‘혼다극장’에서 상연하게 됐다. 서울에서 공연을 볼 때는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된 순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브로드웨이까지는 못 갔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공연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후 청소년 뮤지컬도 만들고 아동극도 여러 편 만들고 오랜 방황을 한 후 다시 방송작가로 돌아왔을 때 난 연극, 뮤지컬, 라디오, TV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작가가 돼 있었다. 예전에는 한 우물만 파라고 하시던 선배님들이 요즘은 “뮤지컬은 어떻게 하게 됐니?”, “예능 작가는 라디오 작가랑 많이 다르니?”, “나도 너처럼 경험 좀 많이 하고 다닐 걸” 칭찬을 많이 해주셨고 난 꿈에 그리던 방송국 작가상도 받게 됐다.

어렸을 땐 나도 빨리 자리 잡고 싶었고, 늘 초조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인생은 그리 짧은 게 아니었고, 최고가 되지 못하면 유일한 사람이라도 되자는 생각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다녔다. 지금도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잠들어 있는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이 모든 일들이 잠을 조금 줄여서 이룬 일이라는 것에 더욱 감사하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