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한 우물만 파라. 너 그러다가 이도 저도 안된다.”
예전에는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일해야 ‘쟁이’라는 말을 들었고 최소한 10년은 해야 ‘프로’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연극배우도 찔끔, 라디오 작가도 찔끔 해놓고 또 TV 예능 프로그램을 기웃거리니까 선배들이 걱정스러운 맘으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렇게 나는 선배들 눈치를 보면서 TV 예능 프로그램에 노크를 하고 다녔다. 다행히 내 마음을 알아준 PD를 만나 TV 프로그램 작가를 하게 됐다. 낮에는 라디오 작가를 하고 저녁에는 TV 프로그램 회의하러 다니고…. 그렇게 밤낮없이 일했더니 어느새 나는 라디오와 TV를 넘나드는 몇 안되는 작가가 돼 있었다.
그런데 내 방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뮤지컬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나 제대로 할 것이지. 배가 불러서 저런다, 고생 좀 해봐야 한다”며 혀를 끌끌 찼다. 난 시간을 쪼개서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그 후 청소년 뮤지컬도 만들고 아동극도 여러 편 만들고 오랜 방황을 한 후 다시 방송작가로 돌아왔을 때 난 연극, 뮤지컬, 라디오, TV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작가가 돼 있었다. 예전에는 한 우물만 파라고 하시던 선배님들이 요즘은 “뮤지컬은 어떻게 하게 됐니?”, “예능 작가는 라디오 작가랑 많이 다르니?”, “나도 너처럼 경험 좀 많이 하고 다닐 걸” 칭찬을 많이 해주셨고 난 꿈에 그리던 방송국 작가상도 받게 됐다.
어렸을 땐 나도 빨리 자리 잡고 싶었고, 늘 초조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인생은 그리 짧은 게 아니었고, 최고가 되지 못하면 유일한 사람이라도 되자는 생각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다녔다. 지금도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잠들어 있는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이 모든 일들이 잠을 조금 줄여서 이룬 일이라는 것에 더욱 감사하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