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연락사무소 북측 인력 철수]北, 南 때리기로 美에 경고장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22일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청사 내 브리핑실을 떠나고 있다. 북한의 이번 결정으로 남북 화해 국면의 상징이던 연락사무소는 개소한 지 약 반년 만에 운영 중단 위기에 놓이게 됐다. AP 뉴시스
○ 미 대북제재 단행에 총공세 나선 北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를 통보한 것은 이날 오전 9시 15분경. 북한은 남북 연락대표 접촉을 요청한 뒤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북한 측 인력 15명은 간단한 서류만 챙겨 사무소를 떠났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는 이날 새벽 미국 재무부가 불법 환적을 통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해운회사 2곳에 대한 독자 제재를 단행하고 한국 선박 등 불법 환적 의심 선박에 무더기 ‘해상거래 주의보’를 발령한 데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 연락사무소 철수뿐만 아니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핵 단추나 로켓 발사 단추를 누르시겠는지 안 누르시겠는지에 대해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발언도 공개했다.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북한 대외 선전매체 메아리는 “남조선 당국이 무슨 힘으로 중재자 역할,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며 “제정신을 가지고 동족과 함께 미국에 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하노이 회담이 끝난 뒤 한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대남·대미 공세로 나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핵단추’ 언급한 北, 미사일 도발 재개하나
연락사무소 철수로 포문을 연 북한은 앞으로 강경대응 수위를 더욱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 타깃은 미국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뒤집고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사일 중단을 치적으로 앞세운 상황에서 연락사무소 철수를 신호탄으로 모라토리엄을 끝낼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도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중단하고 도발 재개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처음으로 한국 선박을 대북제재 위반 의심 리스트에 올려놓은 데 이어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로 하루 사이 북-미 양쪽에서 타격을 받은 한국 정부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남북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이번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청와대는 이날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다시 한번 NSC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남북 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지 닷새 만에 북한이 연락사무소 철수를 단행하면서 한국의 북-미 대화 중재·촉진 구상을 거부한 만큼 당분간 남북 관계도 냉각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한기재·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