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의학전문기자의 ‘먹방’ 도전기
먹방이 신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가 직접 체험해 봤다. 먹방 전후 위(胃) 모양을 3차원(3D)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찍어 보니 결과는 충격적이다. 30배가량 늘어난 위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번 먹방 도전에는 채널A 남혜정 기상캐스터도 함께했다.
5일 동아일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와 채널A 남혜정 기상캐스터가 식탁 가득 놓인 초밥을 보며 놀라고 있다. 이 기자가 초밥 5인분을 먹고 위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니 먹기 전보다 위가 30배가량 늘어났다. 동영상 캡처
남 캐스터도 3인분을 먹었다. 남 캐스터는 “나중에는 음식 맛을 느끼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며 “매일 먹방을 하는 분들이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초밥 5인분을 먹은 뒤 신체 변화를 살폈다. 몸무게는 1시간여 만에 1.3kg이나 늘었다. 체질량지수는 24.2로 0.5가 증가했다. 놀라운 건 3D CT 사진이었다. 위의 부피가 350만6448mm³(약 3.53L)로 커졌다. 1시간 동안 먹은 초밥 5인분에 위가 먹방 전보다 29.4배로 커진 것이다. 사람의 위는 보통 최대 4L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는 이날 오후 내내 속이 더부룩했다. 결국 저녁을 거르고 소화제를 복용했는데도 밤새 속이 불편했다. 보통 한 끼 식사가 위에 머무는 시간은 대략 3∼5시간이다. 5인분을 먹었으니 위의 활동성이 크게 떨어졌을 뿐 아니라 머문 시간도 몇 배 더 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날 아침 위 속에 음식물이 다 내려갔는지 배고픔이 유난히 심했다. 위가 크게 늘어났던 게 공복감을 더 느끼게 만든 원인으로 보인다.
김 과장은 “많은 양의 음식이 갑자기 들어가면 위에 염증이 생기거나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런 먹방을 지속하면 당뇨병과 고혈압, 고지혈증 외에도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울혈성 심부전증, 비만, 관절 문제 등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잦은 폭식으로 늘어난 위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위가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다음에도 그만큼 많이 먹는 악순환으로 위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이나 아동들도 먹방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의 먹방은 더 치명적이다. 우리아이들병원 소아청소년과 백정현 원장은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위산 분비가 적고 상대적으로 소화 능력이 떨어진다”며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먹으면 복통이나 구토, 설사를 유발하기 쉬울 뿐 아니라 성인에게 잘 발생하는 위염이나 위·식도 역류염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과도한 음식물을 소화하려면 우리 몸에 활성산소가 많이 생기는데, 활성산소가 많아지면 결국 면역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감기 등 전염성 질환에 취약해지는 원인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청소년이나 아동들의 먹방은 정부 차원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미국의 19세 여성은 음식을 많이 먹은 뒤 위가 커진 상태에서 구토를 하다가 위와 식도가 찢어져 숨진 일도 있다. 2016년 일본에선 20인분을 넘게 먹은 한 60대 여성이 평소보다 위가 40∼50배 커져 심장으로 들어가는 혈관을 눌러 혈류장애로 사망하기도 했다.
프로 먹방러 중에는 마른 사람도 꽤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의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는 “많이 먹지만 구토를 통해 몸의 흡수를 막거나 격투기 선수처럼 고강도 운동을 통해 들어온 칼로리를 다 소모하면 의학적으로 먹방을 해도 살이 찌지 않을 수 있다”며 “또 먹방 날을 제외하곤 거의 굶거나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갑상샘 기능항진증, 결핵, 암 등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율리 교수는 “먹는 것은 사람의 뇌에서 만족을 관장하는 보상중추를 활성화시킨다”며 “따라서 직접 먹지 않고 먹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먹방을 찍는 것뿐 아니라 먹방을 보는 일도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다이어트 중인 사람은 먹는 것에 굉장히 민감해 먹방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특히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튀김과 같은 고열량 음식을 보면 뇌의 보상중추가 굉장히 활성화된다. 이 때문에 먹방을 본 뒤 바로 폭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먹방을 주기적으로 시청하는 아동에게도 부작용이 클 수 있다. 한림대 의대 가정의학과 박경희 교수는 “먹방을 좋아하는 아이는 먹방 시청 이후 해당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쉽고, 이는 과도한 열량 섭취로 인한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며 “또 자신도 먹방을 따라 해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싶은 욕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이 길면 신체활동량이 줄면서 비만을 일으킨다”며 “가능하면 모바일 기기나 TV, 컴퓨터의 하루 사용 시간을 2시간 이하로 줄이고 나머지 시간의 일부를 야외 활동 시간으로 바꾸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