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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美, 부의 불평등에 분노 확산… 中선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

입력 | 2019-03-23 03:00:00

美밀레니얼 사회주의에 열광, 中젊은층은 시큰둥




서구 사회의 급격한 불평등 심화로 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들의 사회주의 지지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이런 내용을 담아서 소개한 ‘밀레니얼 소셜리즘(Millennial socialism)’ 기사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에서 밀레니얼 소셜리즘에 대한 반응이 뜨겁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다. ‘사회주의 본산’ 중국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까지 나서 사회주의 사상 교육을 외치지만 젊은 세대는 사회주의에 대한 반응이 떨떠름하다. 반면 1950년대 반(反)공산주의를 주창한 매카시즘 열풍이 불었던 미국에선 젊은층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어 대비된다.

○ 양극화의 그늘인가 호기심인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밀레니얼(1981∼1996년 출생) 수는 각각 7300만 명, 3억5100만 명으로 각각 전체 인구의 22%, 25%를 차지하고 있다. 양극화에 분노하고 사회주의란 생소한 개념에 호기심을 보이는 미국 젊은이들은 호의적이다. 반면 개인주의의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한 중국 젊은이들은 냉담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의 1월 조사에 따르면 미 18∼24세 중 61%가 “사회주의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자본주의 긍정 응답(58%)을 넘어선 수치다. 지난해 8월 갤럽의 비슷한 조사에서도 사회주의 긍정 응답이 51%로 자본주의에 대한 호응(45%)보다 많았다. 갤럽 조사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이 자본주의보다 높았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꼽는 원인은 양극화다. 40년간 미 상위 1%의 소득은 242% 늘었다. 같은 기간 중간소득자의 증가보다 6배 많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소득불평등 척도인 지니계수는 2007년 0.463에서 2017년 0.482로 증가했다. 지니계수 수치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심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니계수가 0.5를 넘으면 폭동 등 극단적 사회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본주의의 화신인 ‘월가 금융 황제’조차 이를 우려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18일 “미국인 중 40%가 시간당 15달러(미 평균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는다. 이들은 병원비나 차 수리비 등 월 필수 생활비 400달러도 없다”고 지적했다.

양극화는 급진 정치인의 득세를 부추긴다.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현재도 차기 대선후보 중 지지율 선두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8·버몬트)도 소속만 민주당일 뿐 ‘사회주의자’를 자처한다. 2016년 당시 샌더스 캠프에서 일했고 트위터 추종자만 360만 명인 ‘미 정계의 아이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30·뉴욕)도 마찬가지. 그는 “2030년까지 미 에너지원을 전부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부유층에 소득세 70%를 부과해 재원을 조달하자”며 이를 ‘그린 뉴딜’이라 주장했다. OECD 회원국 국민 67.8%가 “부유층 과세로 빈곤을 완화하자”고 했다는 조사도 있다.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속한 사회주의단체 민주사회주의연합(DSA)은 이민 및 세관 폐지, 의료보험 전면 개혁, 공립대 무상등록금, 전쟁 영구 종식, 총기 규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등을 주장한다. 일각에서 공화당 극우그룹 티파티에 빗대 이들을 ‘허브 티파티’(Herb Tea Party·녹색 약초 식물 허브와 티파티의 합성어)로 부를 정도다.

서구 젊은이의 사회주의 선호를 ‘냉전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낳은 일종의 환상’으로 보기도 한다. 역시 젊은층 사회주의 선호가 높은 호주의 한 조사에서도 밀레니얼의 58%가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했다. 동시에 불과 21%만이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이 누구인지 안다”고 해 충격을 안겼다. 블라디미르 레닌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안다는 답도 26%에 불과했다.

○ “집단보다 중요한 개인”


중국 정부는 젊은 세대에게 중국식 사회주의를 어떻게 독려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중국은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 및 마오쩌둥 사상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올해부터 당국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회주의 이념 선전에 나섰다. 최근 사회주의 사상을 랩으로 만들어 체제를 선전하는 소위 ‘사회주의 래퍼’도 등장했다.

정작 ‘중국판 밀레니얼’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생)나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들은 여기에 큰 관심이 없다. 베이징 거주 바링허우인 왕(王)모 씨는 기자에게 “학교에서 늘 ‘집단이 먼저고 개인은 나중’이라고 배웠지만 대학 졸업 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개인도 중요함’을 느꼈다”며 “특히 집단을 위해 무조건 나를 희생시켜야 하는 건 아님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최고지도자의 발언, 공산당 발표 등을 가리킬 때 ‘정치적으로 정확하다(政治正確)’는 표현을 쓰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마음속으로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딩쉐량(丁學良) 선전대 특별초빙교수 겸 정치학자도 BBC 중문판에 “중국이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사상 교육을 해 왔지만 효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어떤 학교에서는 사상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이 절반이 안 되고, 수업에 온 학생도 잠을 자거나 소설책을 읽으며 떠든다”고 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도 “새로운 도구를 써도 젊은층으로선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사회주의 사상을 새롭게 받아들이긴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시 주석이 1월 “중국 청년들이 사회주의 후계자가 되도록 확실히 보장하라”고 강조한 것도 그만큼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식 사회주의가 서구에 대한 배척만 강조할 뿐 중국의 경제 체제는 친(親)자본적이어서 애초부터 모순을 잉태한 셈이라고 비판한다. 리네트 옹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중국은 사회주의 가면을 쓴 자본주의 국가이자 ‘카를 마르크스’(공산주의 이념 창시자) 옷을 입은 ‘애덤 스미스’(자유시장 경제를 주창한 고전 경제학자)”라고 꼬집은 이유다. 특히 중국도 양극화가 심각하다. 2015년 한 정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 상위 1%의 소득은 전 인구 소득의 14%로 하위 50%의 소득을 다 합친(15%) 것과 비슷하다.

○ 엇갈린 밀레니얼의 정치 영향력

G2 밀레니얼은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온도 차 못지않게 자국 정치판에 미치는 영향력에서도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인다.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를 지녔지만 이들의 정치 참여도와 국가 통제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현재 7300만 명인 밀레니얼이 조만간 미 최대 인구집단 베이비부머(1946∼1964년 출생자) 세대를 제칠 것”이라며 “성인이 된 이들의 표심이 2020년 미 대선을 포함해 향후 주요 선거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중국 밀레니얼은 공산당이 주도하는 현 주류 이념에 반기를 들 만큼 강력한 변화 의지를 보이지는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김한권 교수는 “다수의 중국 젊은층은 정치 제도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며 “그런 점에서 향후 중국식 사회주의 향방은 밀레니얼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노선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