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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정은]아베-트럼프 ‘케미’ 맞추기에 더 공허해 보이는 한미공조

입력 | 2019-03-25 03:00:00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석 달 연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날 것 같아요. 트럼프 대통령과 친한 모습을 보이려고 엄청 공을 들이고 있다니까요.”

최근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마주친 일본 기자는 왠지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바빠질 것 같다”는 푸념이 자랑처럼 들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달 연속으로 3번이나 같은 상대와 정상회담을 한다니, 그것도 미국과 일본의 현안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도 않는 시기에….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5월 도쿄 방문 및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일찌감치 예정돼 있던 일정이었다고 한다. 6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해 호스트인 아베 총리와 회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정을 앞두고 아베 총리는 왜 굳이 백악관에 4월 워싱턴 방문을 타진했을까. 하노이 회담의 결렬 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물론이고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대한 양국 공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마침 4월에는 미일 간 ‘2+2’(외교+국방) 회담도 예정돼 있다.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가 개최하는 각종 세미나에 일본과 관련된 주제도 부쩍 늘어났다. ‘도쿄의 2020 사이버 안보 전략’ ‘바다를 건너는 우정―미국과 일본’ ‘격변의 세계에서 일본의 역할’ 같은 제목들이 눈에 띈다.

미국과 협의할 현안이라면 한국이 일본 못지않게 많다. 자동차 관세와 관련된 무역확장법 232조의 적용 문제, 올해 상반기 다시 시작될 차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둘째 치고 당장 북핵 문제가 걸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중재를 요청받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촉진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 레벨에서의 밀도 있는 협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한미 정상회담 소식이나 관련 움직임은 들리지 않는다.

문 대통령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한 번 만날 뻔했다. 하노이 회담 전 한미 정상회담을 하자는 청와대의 제안을 백악관은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다만 조건은 아베 총리까지 3자로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역제안을 받아 든 정부가 다소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사이 막상 일본 측에서 아베 총리의 빡빡한 일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했고, 결국 3자 회담은 무산됐다는 것이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결국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협의는 전화 한 통으로 대체됐다.

요즘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나 당국자들의 시선에는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북한 측에 비핵화 결단을 설득하기보다 북한 편을 들며 미국에 제재 완화를 설득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는 분위기다. “비핵화가 문제라 아니라 한미 공조가 더 문제”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그런데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청와대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에 내놓은 ‘빅딜’ 요구를 놓고 “전무 아니면 전부(all or nothing) 전략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라는 고위 당국자의 백그라운드 브리핑 내용이 전해졌을 때는 “상황만 되레 악화시키고 있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한미 정상이 긴밀히 협의하는 모습을 통해 탄탄한 공조를 확인하고, 이를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대북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케미스트리’에 의존해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키려다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정상 간 케미 작용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양국 정상의 관계가 서걱거린다면 없는 케미라도 만들어내야 할 판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